[스포츠서울 | 최규리 기자]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WSJ)을 비롯해 외신에서 앞다투어 집중 조명하는 국내 여성 오너가 있다. 김정수 삼양 부회장이다. 그는 남성 상속자들이 즐비한 유통가에서 ‘불닭볶음면’으로 국내를 넘어 글로벌 유통가의 새로운 신화를 썼다. 불닭볶음면은 지난 4분기 호실적에 이어 이제 ‘1조클럽’ 입성을 앞두고 있다.
국내 유통가에서 며느리가 기업의 성공 주역이 된 사례는 이례적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은 미국 코스트코와 월마트, 앨버슨 등 대형 마트에 진출했고, 크로거의 판매대에도 곧 올라갈 예정이다. 실제 ‘불닭 시리즈’의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액은 3조2000억원으로 이중 수출이 2조3000억원이다. 증권가에서도 삼양식품이 소맥 등 원자재 가격 하락과 수출 증가 등으로 고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전망한다. 김 부회장의 성공사례가 된 불닭볶음면은 장수 브랜드로 정체성을 굳혀가고 있다.
그러나 삼양식품의 ‘매운맛 시리즈’는 불닭볶음면이 끝이 아니다. 엄마의 성공을 따라 매운맛 신화를 이어받으려는 아들이 있다. 전병우 전략 총괄 상무는 94년생으로, 김 부회장의 장남이자 고 전중윤 명예회장의 장손이다.
◇ 94년생 오너의 ‘맵탱’…엄마의 바통 이어받을 줄 알았는데
삼양애니 대표 겸 삼양라운드스퀘어 전략기획본부를 이끄는 전병우 상무는 지난해 9월 열린 삼양라면 출시 60주년 기념 비전 선포식에 참여하며, 공식 석상에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 2019년 입사 이후, 공식적으로 경영자의 행보를 알린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전 상무는 유통가에서 삼양식품의 3세 경영을 본격 개시했다.
당시 전 상무는 “삼양의 본질은 여전히 라면이다. 라면이야말로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의 산물이다. 음식을 통해 일상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질병을 예방하고 싶어 한다”며 “삼양라운드스퀘어는 과학기술과 문화예술 두 축을 중심으로 소비자의 삶을 건강하고 더 즐겁게 만들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전 상무는 포부와 함께 지난해 매운 국물라면 브랜드 ‘맵탱’을 새롭게 선보이고 ‘맵탱 흑후추소고기라면’ ‘맵탱 마늘조개라면’ ‘맵탱 청양고추대파라면’ 등 신제품 3종을 출시했다.
맵탱은 전 상무가 제품 기획부터 디자인, 광고 등 전 과정에 직접 참여한 작품이다. 또한 전 상무는 맵탱 푸드트럭 행사를 진행해 마케팅을 강화하는 등 기획과 출시를 이끌었다.
그러나 전 상무가 제작부터 생산까지 공들이고,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추진한 것에 비해 맵탱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큰 반응은 오지 않고 있다. 지난 2012년 출시 당시 화제를 모았던 불닭볶음면과는 다른 기조를 보인다.
업계의 한 전문가는 “라면 제품은 특히 장수 브랜드가 많기 때문에 불닭볶음면처럼 라면 맛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지 않고는 흥행하기 어렵다”며 “더군다나 식음료의 경우 흥행하려면 먹태깡처럼 출시와 같이 주목받아야 했다. 맵탱은 두고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맵탱은 현재 라면 제품 중 낮은 인지도로, 안정적으로 시장에 안착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삼양식품 관계자는 “맵탱은 아직 분기 매출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출시한 지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아직 수치가 공개되는 것은 부담스러운 입장이다. 올해 다양한 측면으로 강화해서 브랜드 인지도를 올리고, 매출도 함께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 미래 먹거리 발굴하러 ‘CES 2024’ 찾은 전 상무…선구안을 갖추길
맵탱의 매출 미공개는 라면시장서 성장세에 진입하지 못한 상황을 의미한다.
이대로라면 “불닭볶음면 이외에 특출난 제품이 없는 게 한계”라는 식품업계와 증권시장의 의구심을 굳히는 셈이다. 특히 삼양식품은 줄곧 불닭볶음면에만 포트폴리오가 쏠려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엄마의 불닭볶음면 흥행을 이어 식품 포트폴리오를 다각도하고 미래 먹거리, 글로벌 체제를 강화하는 것이 전 상무의 과제다.
지난해 삼양라운드스퀘어로 그룹 CI 리뉴얼을 직접 추진하고, 기업 철학과 비전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 그룹의 변화를 진두지휘했던 전 상무는 이번 ‘CES 2024’에도 참석했다.
전 상무는 리테일 테크와 푸드테크, 애그테크, 웰니스 테크 등 다양하게 살펴보고 미래 먹거리를 발굴한다는 계획이다.
CES 2024에는 전 상무뿐만 아닌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장남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전략본부장 부사장 등이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들은 유통업계 오너가 3·4세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한 이번 연말연시 모두 정기 임원 인사에서 나란히 승진하며 경영 전면에 나섰다.
공통된 미래 먹거리 발굴이란 과제를 안고 유통업계 경쟁력 확보에 나섰다. 이는 전 상무가 시험대에 오른 것과 같다.
업계 전문가는 “전병우 상무는 경영권을 승계받기에 이른 나이로 신유열 상무, 김동선 부사장에 비해 경영 참여도가 다소 늦은 감이 있다”며 “그러나 오히려 이들보다 젊은 피로 엄마인 김 부회장을 이어 삼양의 구원투수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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