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KBS2 ‘고려거란전쟁’이 ‘연기대상’ 대상 배출작에서 ‘금쪽이’로 전락했다.
지난해 11월 첫 방송된 ‘고거전’은 지난 달 31일 서울 여의도 KBS에서 진행된 ‘2023 KBS연기대상’에서 강감찬 역을 연기한 주연배우 최수종의 대상 수상을 비롯, 베스트커플상 등 총 6개의 상을 싹쓸이했다. 방송된지 두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총제작비 270억원을 투입한 ‘고거전’은 이전과는 다른 사극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기병을 앞세운 수만 명의 거란군과 이에 맞서는 고려군의 검차, 불덩이가 하늘을 뒤덮고 그 아래 날 선 칼을 피해 돌진하는 거란군과 막아서는 고려군의 백병전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붙들었다.
현종(김동준 분)과 강감찬(최수종 분)의 서사가 바탕이 된 가운데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무신 양규(지승현 분)를 중심으로 그려진 전쟁신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엄청난 스케일과 디테일한 고증에 대중이 환호했고 ‘고거전’은 상승 기류를 탔다. 10회 만에 시청률 10%(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를 넘어섰다.
그러나 귀주대첩 이후 16회에서 양규가 사망한 뒤 드라마는 궁중 암투를 중심으로 한 정쟁 형태로 변모하며, 기존 이야기와 어긋나는 인상을 줬다. 현종이 호족을 내치는 과정이 현실성이 없을 뿐 아니라 감정적으로 그려졌다. 역사에서 명군으로 인정받는 현종 캐릭터가 ‘민폐 캐릭터’로 변질됐다. 급기야 18회에서 현종이 감정을 주체 못 하고 낙마하는 장면이 나오자 시청자의 분노가 폭발했다.
‘고거전’의 원작 소설을 집필한 길승수 작가는 “현종의 낙마 장면은 원작에 없다”며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숙지하고 자문도 받고 대본을 썼어야 했는데, 충분한 숙지가 안 됐다고 본다. 대하사극이 아닌 웹소설 같다”고 토로했다.
그의 블로그에는 적잖은 ‘고거전’ 팬들이 몰려와 질문을 남겼고, 길 작가는 제작진에 대한 불만을 연거푸 털어놨다. 특히 고려시대 역사에 대해 왜곡된 묘사를 하는 대본 작가를 일갈했다.
이와 관련해 충남대 윤석진 교수는 “드라마가 꼭 원작의 방향대로 갈 필요는 없다. 원작대로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이런 불만은 고난의 시대를 이겨내는 현종의 관용과 리더십을 보고 싶은 시청자들의 기대에 못 미치면서 발생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18일에는 KBS 시청자 센터 내 시청자 청원게시판에 ‘고려거란전쟁 드라마 전개를 원작 스토리로 가기를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해당 청원은 23일 12시 기준 966명이 동의했다. 이 청원은 30일 동안 1000명이 동의하면, 관계 부서에서 답변해야 한다.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자 ‘고거전’ 제작진은 23일 입장문을 내고 길 작가를 비롯한 시청자들의 의혹을 해명했다. 2020년부터 대하드라마를 준비하며 ‘고거전’을 기획했다는 전우성 PD는 이날 원작 소설과 드라마 전개가 전혀 다른 이유를 설명했다.
전 PD는 “비록 ‘고거전’의 주인공이 황제와 장군이지만, 백성의 입장에서 전쟁과 정변을 빠짐없이 담으려 했다”며 “이정우 작가가 합류한 뒤 원작 소설과 드라마 방향성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후 조정란 박사를 중심으로 한 새 자문팀을 꾸렸다”고 시대상 숙지 부족에 대한 의혹을 해명했다.
제작진의 해명에도 대중의 분노는 누그러지지 않는 모양새다. 여전히 원작 소설의 방향성대로 드라마가 이어지길 바란다는 글이 각종 커뮤니티에 적잖이 올라오고 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제목이 ‘고려거란전쟁’인만큼 대중은 전쟁의 양상에 벌어지는 영웅 서사를 보고 싶었다고 해석된다. 그 흐름대로 잘 가고 있다가 양규 죽음 이후 정쟁으로 바뀌었다. 그 과정에서 현종이 이상만 있고 현실감은 없는 인물로 묘사됐다”며 “전쟁 중에 정쟁을 펼치는 것 자체가 답답한 설정이다. 차라리 외교전쟁 형태로 틀을 바꿨다면 이런 비판은 피했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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