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용일 기자] “홍명보 감독 선임 몰랐다. 전력강화위원회는 앞으로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전 축구국가대표 박주호(37)의 작심 발언으로 대한축구협회(KFA)는 다시 쑥대밭이 됐다. 가뜩이나 새 감독 선임 과정을 두고 ‘절차적 정당성’ 논란이 따랐다.
‘내부자’인 박주호가 전력강화위원직을 내려놓고 지난 5개월 과정을 밝히면서 KFA의 행정 난맥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 KFA는 발언의 진위를 떠나 비밀유지협약을 위반한 박주호를 상대로 법적 조처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주호는 8일 오후 자신의 유튜브 채널인 ‘캡틴 파추호’를 통해 전력강화위원으로 활동하며 느낀 점을 장시간 밝혔다. 특히 방송 촬영은 7일 오후 진행했는데, 그 사이 KFA에서 홍 감독 내정을 발표했다. 박주호는 “정말 몰랐다”며 크게 당황해했다.
8일 오전 홍 감독 선임을 마무리하고 브리핑을 연 KFA 이임생 기술본부 총괄이사는 “(최종) 결정을 내린 후 전력강화위를 소집해야 하지만 언론 등 외부로 (소식이) 나가는 게 두려웠다. (전력강화위에 남은) 5명 위원에게 최종 후보 중 내가 결정해도 되겠느냐고 물었고 동의를 받았다”고 강변했다.
그럼에도 전력강화위원으로 오랜 시간 함께한 이들이 발표 시점까지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박주호는 “결국 결정은 협회에서 했다. 전력강화위원회는 앞으로 필요가 없다. 5개월간 무엇을 했나 싶다. 허무하다”고 비판했다.
그는 협회와 전력강화위 내부에서 국내 감독을 선임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는 사실도 폭로했다. 박주호는 “어떻게 보면 빌드업이다. 회의 시작전부터 ‘국내 감독이 낫지 않느냐’는 대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또 “내게 ‘주호야 넌 지도자를 안 해봤잖아’라고 말한 위원도 있다”면서 의견을 존중받지 못했다고도 했다.
허술한 보안과 책임 의식 결여도 언급했다. 그는 “서로 유출하지 말자고 (정해성) 위원장께서 카카오톡에 쓰자마자 (회의 내용이) 바로 뜬다”며 “어떤 위원은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했다. 연령별 대표 감독 등을 하려고 뒤에서 얘기하더라”고 밝혔다.
이밖에 후벵 아모림, 제시 마쉬 등 자신이 추천한 외인 감독에 대한 전력강화위 태도와 두 차례 임시 감독 체제를 투표로 결정한 점까지 언급하며 협회 행정을 비판했다.
박주호의 말이 모두 사실이면 ‘톱다운’ 방식 감독 선임을 막고자 한 KFA 전력강화위는 해체 절차를 밟을 수밖에 없다. 정몽규 회장을 비롯한 고위 관계자의 주먹구구식 선임 절차와 비합리적인 조직 운영의 실태 역시 지속해서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전력강화위 내부에서는 박주호 발언에 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한 위원은 “너무 과하게 말한 게 있긴 하나 사실이다. 용기 있는 발언”이라고 했다. 반면 또다른 위원은 “위원은 비밀유지 협약서에 서명하고 참여해왔다. 본인 (유튜브) 채널 이익을 위해 무리수를 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비밀유지 의무는 위반했지만, 발언 내용은 사실이라는 것을 유추할 수 있다.
KFA는 9일 박주호 발언에 대해 대책 회의에 나섰다. 비밀유지 협약서에 서명한 것을 근거로 법적 대응을 강구하고 있다.
그러나 축구팬 뿐 아니라 축구인조차 KFA 행정에 등을 돌리는 분위기다. 민심은 KFA로부터 갈수록 멀어지고 있다. 그래서 논란이 일어날수록 해결책은 하나로 귀결되고 있다. kyi0486@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