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반신반의 했다. 국내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데다 일부 선수는 아이돌급 인기를 구가하는 KBO리그도 못한 것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상반기에만 4억원이 넘는 기금을 조성했다.
걸음마 단계이지만, 발걸음을 내디딘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가 국내 프로스포츠 최초로 도입한 선수연금제도가 이미 궤도에 진입했다.
스포츠서울이 KPGA를 통해 확인한 선수연금 누적액은 17일 현재 최대 4억 1037만8910원이다. 상반기 KPGA투어 13개 대회의 총상금 136억7929만7000원의 3%를 적립한 액수다. 해외투어 자격으로 출전한 선수는 연금혜택 대상에서 제외되므로, 대회별 적립금 규모가 달라질 수 있다.
KPGA투어는 내달 29일부터 경남 양산에 있는 에이원컨트리클럽에서 렉서스 마스터스로 하반기를 시작한다. 9개 대회에서 139억7320만원의 총상금이 지급될 예정(제네시스 챔피언십 400만달러는 17일 현재 환율 적용)이어서 올시즌 총상금액은 276억5249만7000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선수연금제도 도입 첫해 적립금만 8억2000여 만원 수준이다.
첫 번째 연금 혜택을 받는 선수는 2029년4월1일부터 수령할 수 있다. 매년 올해만큼 연금을 적립한다고 가정하면, 만 50세가 된 선수들은 최대 41억4787만원 가량을 나눠가질 수 있다.
KPGA투어에서 활동 중인 선수 수를 고려하면, 적은 액수가 아니다. 프로스포츠 종목 중 유일하게 선수협회를 운영 중인 KBO리그나 국가대표 선수들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K리그에서도 시행하지 못한 일은 KPGA가 국내 프로스포츠 사상 최초로 해내는 셈이다.
액수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제네시스 대상을 따낸 함정우(30·하나금융그룹)는 “선수를 위해 쌓는 기금이므로 당연히 좋은 제도라고 생각한다. 선수로서는 연금을 더 많이 쌓기 위해 동기부여도 된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가 경쟁력을 키우려고 노력할 것이고, 이 노력들이 더해져 자연스럽게 투어 경쟁력이 향상할 것으로 생각한다. 투어 흥행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반겼다.
필드와 스크린을 오가며 탄탄한 팬덤을 형성한 김홍택(31·볼빅) 역시 “선수 입장에서는 더 힘이 나는 게 사실”이라며 “선수를 위한 복지제도이므로 투어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에게는 굉장히 긍정적인 요인”이라고 말했다.
각 대회 총상금의 일정 부분을 적립해 만드는 기금인만큼 수령 자격도 세분화했다. 전체 적립금의 66.7%가량은 ‘컷통과 연금’으로 남은 33.3%는 ‘포인트 연금’으로 각각 지급한다.
컷통과 연금은 KPGA투어 시즌 전체 대회 중 33.3% 이상 컷 통과한 선수들에게 돌아간다. 올시즌으로 가정하면, 22개 대회 가운데 7~8개 대회 이상 컷통과한 선수들이 수혜 대상에 포함된다는 뜻이다.
포인트 연금은 시즌 전체 대회 수의 33.3% 이상 출전해 시즌 종료 후 대상포인트 70위 이내에 들어야 받을 수 있다.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면, 모두 받을 수 있다. 여러대회에 출전해 좋은 성적을 낼수록 많은 액수를 수령할 수 있으니, 동기부여가 될 수밖에 없다.
KPGA는 “연금은 만 50세가 되는 날부터 60세가 되는 날까지 10년 동안 신청할 수 있다. 신청하면 다음해부터 수령할 수 있고, 만 60세 생일까지 연금 지급 시기를 선택하지 않으면 다음해 4월1일부터 자동지급한다”고 설명했다.
협회 측은 “월급형태로 지급할 계획인데, 월 수령액이 20만원보다 적으면 일시불로 지급할 수도 있다”고 귀띔했다.
선수연금 제도는 수 년간 군불만 지피다가 김원섭 회장이 취임한 직후 총회에서 최종승인됐다. 협회와 선수뿐만 아니라 투자·법무·세무 등 외부 전문가로 구성한 연금위원회를 신설해 투명하게 운영·집행하기로 했다.
구단 이기주의와 선수 개인주의 탓에 시도조차 못하는 다른 프로스포츠계가 KPGA의 통큰 결단에 박수를 보내야 할 일이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