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혈흔이 낭자한다. 날카로운 칼과 클로가 상대의 몸을 움푹 쑤신다. 누구라도 금방 죽을 수밖에 없는 처절한 싸움이지만, 힐링 펙터(재생력)가 뛰어난 데드풀(라이언 레이놀즈 분)과 울버린(휴 잭맨 분)에겐 그리 큰 상처를 입히진 못한다. 서로가 서로에 칼을 휘두르면서 점차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24일 개봉하는 ‘데드풀과 울버린’은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MCU)에서 제작했다. 두 캐릭터 모두 20세기 폭스사의 소속이었으나, 마블사가 20세기 폭스를 인수하면서 MCU 스토리에 녹아들게 됐다.
페이지5로 접어들면서 멀티버스를 다룬 마블 유니버스에는 TVA의 신성한 시간선이 핵심 소재가 됐다. 너무 난해하고 복잡한 설정 때문에 마블은 작품마다 시간의 개념을 설명하느라 바빴다. 마블의 지속적인 실패는 너무 어려운 설정 때문이라는 게 평단의 평가다.
이른바 ‘제4의 벽’(연극 밖의 현실 세계와 무대 위에서 전개되는 극중 세계를 구분하는 가상의 벽을 일컫는 연극 용어)을 뛰어넘는 유머를 비롯해 다소 상스럽고 천박한 19금 개그를 일삼으며 색다른 재미를 준 데드풀조차도 마블 멀티버스의 난해한 세계관 안에선 지루함을 줬다.
‘데드풀과 울버린’은 히어로의 인생을 벗고 중고차 딜러로 살아가던 데드풀이 TVA에 끌려가면서 시작됐다. TVA 소속 패러독스(맥스 맥퍼딘 분)를 만난 데드풀은 자신의 우주 속 주축 인물인 울버린이 죽게 되면서 그 우주가 72시간 내 사라질 것이라는 말을 듣는다.
울버린을 살리기로 마음 먹은 데드풀은 각종 시간선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울버린을 만났고, 결국 가장 성격이 포악한 울버린을 데리고 TVA로 돌아와 자신의 우주를 구하려 한다. 하지만 TVA 직원들과 다투다 세상의 끝으로 통하는 보이드로 떨어지게 된다. 데드풀은 울버린과 함께 데드풀의 우주를 구출할 수 있을까.
맛깔 나는 입담으로 늘 관객에게 웃음을 줬던 데드풀조차 복잡하게 얽힌 신성한 시간선을 제대로 설명하는 건 무리였다. 설정을 설명하는 대사가 너무 많았고, 어쩔 수 없이 전개는 늘어졌다. 직관적으로 설명되지 않을 뿐 아니라 선과 악도 분명하지 않아 의외로 쾌감이 크진 않다. 아울러 ‘엑스맨’ 시리즈와 각종 밈을 이해하지 못하면 쉽게 따라가지 못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액션만큼은 훌륭한 볼거리다. 데드풀의 매력을 한껏 살린 잔인한 액션과 울버린과의 두 번의 처절한 승부, 후반부 등장하는 엄청난 카메오들과 충격적 액션 등 볼만한 장면이 적지 않다. 유머 역시 살아있다. 제4의 벽을 넘어들면서 명치를 때리는 듯 송곳처럼 꽂는 대사나 강렬하게 전달되는 19금 개그, 두 캐릭터를 활용한 유머 등 웃기는 장면도 많다. 6년 동안 기다린 ‘데드풀’ 팬들에 완벽하진 않더라도 적잖은 해소를 줄 것으로 보인다.
‘데드풀’은 영화적으로 20세기 폭스사에 대한 존중을 표했다. 20세기 폭스사 로고가 등장하고, 후반부 쿠키영상으로도 폭스사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다만 ‘데드풀’스러운 방식이다. 조롱과 존중을 오고가는 방식이 색다른 즐거움을 안긴다. 비록 첫 술에 배부르진 못하겠지만, 앞으로 수많은 마블 히어로와 함께 뛰고 놀 데드풀의 활약이 충분히 기대될만한 새 출발이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