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표권향 기자] 뮤지컬 관람객을 살펴보면 2030세대가 주를 이룬다. 그런데 최근 공연장을 찾는 연령대가 높아졌다. ‘어머니들의 반란’이 시작된 것. 40대부터 80대까지 남편, 자녀와 동반하거나 삼삼오오 짝을 이뤄 문화생활을 즐기고 있다.

다양한 장르의 공연 관람 예절 중에서도 특히 뮤지컬 에티켓은 엄격하다. 누가 정한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 ‘뮤덕(뮤지컬 덕후)’들 사이에서 하나의 룰처럼 자리 잡았다. 이들이 정해놓은 틀은 오페라, 클래식 공연보다 까다롭다.

‘뮤지컬 관람 예절’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다른 장르의 공연과 마찬가지로 기본 매너는 당연하지만, 자세를 바꾸거나 작은 기침 시 더 예민하게 반응하는 주변 관람객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다.

대극장 공연의 경우 인터미션이 있어 잠깐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보통 화장실을 이용하거나 한 자세만 유지하면서 찌뿌둥해진 몸의 피로를 푼다. 그러나 관람객을 모두 수용할 수 없는, 턱없이 부족한 화장실과 휴식 공간 탓에 높은 연령대가 감당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다.

가계부를 써가며 한 달 생활비 고민으로 허리띠를 조여 매는 어머니로서는 고가의 티켓값도 감당하기 부담스럽다.

이러한 어머니들이 과감하게 지갑을 열었다. 평소 좋아하던 가수가 뮤지컬 배우로서 무대에 오른다는 소식에 조금 더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과 호기심에 공연장을 찾았다. 그리고 점점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이젠 다양한 작품을 찾아다니며 소녀 감성을 불태우고 있다.

◇ 전국 각지서 모인 4060세대…새로운 세계에 눈 뜨다!

지난 6월부터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예술의전당 주차장에는 전국 각지에서 도착한 관광버스가 대기 중이다.

해당 버스의 탑승객들은 뮤지컬 ‘4월은 너의 거짓말’에서 주인공 ‘아라마 코세이’ 역을 맡은 가수 겸 배우 김희재를 보기 위해 서울을 찾은 그의 팬들이다.

한 관람객은 그의 공연을 보기 위해 캐나다에서 귀국해 몇 달째 체류 중이라고 했다.

이처럼 어머니 관람객들도 ‘최애’ 배우를 응원하기 위해 잠시 가정에서 해방돼 여가생활을 즐기고, 잊었던 학창 시절의 추억을 떠올린다.

트로트 가수로서 인기몰이 중인 김희재는 지난해 뮤지컬 ‘모차르트’을 통해 배우로 데뷔했다. 올해는 ‘4월은 너의 거짓말’로 풋풋했던 첫사랑의 감수성을 자극한다.

작품 속 코세이의 단짝 친구인 사와베 츠바키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눈에 보이는 거, 귀에 들리는 거, 전부 다 컬러풀하게 바뀐대”라고 말한다.

어머니들의 세상도 바뀌었다. 이들은 좋아하는 배우의 공연을 보러왔다가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접한 후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세계를 알게 됐다며 무지갯빛 행복을 만끽한다.

김희재를 보러왔던 어머니 팬들은 이제 뮤지컬의 매력에 빠져 동시 캐스트인 이홍기, 윤소호의 공연까지 챙겨본다. 배우 한 명으로 시작된 ‘덕질’이 ‘자첫(공연을 처음 보는 상황)’에서 시작해 자둘(두 번째 관람), 자셋(세 번째 관람)으로 늘어나고 있다.

더 나아가 타 공연까지 검색해 ‘취켓팅(취소표 예매)’ 열전에 뛰어드는 등 예매 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 추억 소환에 웃음·울음바다…#뮤지컬십계명 #덩실덩실 #진정한이별

뮤지컬 ‘4월의 거짓말’의 주 관람 연령층은 4050세대다. 물론 김희재를 보러 온 어머니 팬들이 대부분이지만, 소문을 듣고 남편, 자녀들이 티켓을 예매해 함께 공연장을 찾은 모습도 눈에 띈다.

어머니 팬들의 텐션은 남다르다. 커튼콜 때 덩실덩실 춤을 추는가 하면 대사들을 곱씹으며 예리한 피드백을 내놓으며 웃음꽃을 피운다. 그 모습에 하품하면서도 뿌듯해하는 남편·아들들의 모습도 종종 포착돼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면서도 공연 중에는 다른 관객들의 눈치를 본다. ‘내 배우’가 혹시나 본인으로 인해 피해 보진 않겠냐는 걱정 때문이다.

김희재는 “우리 팬들은 누나들이기 때문에 한 곡이 끝난 후 박수 쳐도 되는지에 대해 고민한다고 한다. 날 생각해서 (뮤지컬) 공부도 많이 한다”라며 “혹여나 우리 팬들이 예의를 지키지 않았을 때 배우가 욕먹을 수 있다며 무대 밑에서 매너를 잘 지켜야 한다고 서로 얘기한다”라고 말했다.

김희재의 팬카페 ‘희랑별’에는 뮤지컬 매너 ‘십계명’이라는 글이 있다. 그의 팬들이 관람 시 지켜야 할 에티켓 10가지 조항을 정리해 공유한 것이다.

김희재는 “트로트 공연 땐 아낌없이 박수를 쳐주는 열정적인 팬들이다. 그러나 뮤지컬 공연에서는 코세이처럼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 박수를 치려다가도 참자는 모습을 보인다. (뮤지컬 공연 중에는) 배우를 위해 예의 넘치는 조심스러운 팬들이 된다”라며 “공연을 봐주러 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모두 나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기에 말할 수 없이 감사하고 감동”이라고 전했다.

극 중 코세이는 어머니를 잃고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 못하지만, 결국 친구들과 음악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인물이다. 공연을 보는 이들 중에서 이와 비슷한 사연이 있거나 언젠가 이별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공감대가 높은 작품으로 꼽힌다.

김희재는 실제 어머니와 아직 이별하지 못했던 팬의 사연을 소개했다. 그는 코세이의 넘버 ‘잘 가, 엄마’를 듣고 작별 인사를 잘했다는 팬의 후기를 나눴다.

김희재는 “이별했어도 이별하지 못했던 분들이 많이 우셨다고 했다”라며 “삶에서 느낄 수 있는 감동과 아픔이 같이 느꼈기 때문인 것 같다. 또 풋풋한 학창 시절이 떠올라서가 아닐까”라며 여운을 남겼다.

가족끼리 ‘희생’이란 단어가 어울리진 않지만, 어머니가 ‘양보’하고 내려놓는 것들이 많다.

어머니도 소녀 시절이 있었고, 딸이자 아내인 여자다. 말로만 “엄마 OOO의 삶을 살아”라며 안타까워하지 말고, 함께 문화생활을 즐기면서 직접 표현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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