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조은별 기자] “연진이란 인물이 저한테서 쉽게 지워질 것 같지 않아요. 굳이 그 이름을 지우려고 노력하지도 않고요. 연진이는 연진이, 정윤선은 정윤선이니까요.”
지난해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글로리’의 연진이로 글로벌 악녀로 자리매김한 배우 임지연이 또다시 자신의 ‘커리어 하이’를 증명했다. 7일 개봉한 영화 ‘리볼버’에서다. 극 중 비리 경찰 하수영(전도연 분)의 조력자인 마담 정윤선 역이다.
극 초반 윤선은 속을 알 수 없는 인물로 묘사된다. 수영의 죽은 연인인 임석용(이정재 분)과 내연 관계였던 윤선은 출소한 수영을 유일하게 마중나왔다. 거액의 빚 때문에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수영의 적들에게 고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윤선은 이 사실을 수영에게 털어놓으며 은근히 그의 복수를 돕는다. 처음 본 수영에게 다짜고짜 “언니”라고 사근사근하게 대하고 수영의 ‘에브리띵(everything)’이 마음에 든다며 속없이 웃는다.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이 캐릭터는 임지연을 만나 빛을 발하며 무채색 일변도의 영화에 색을 입혔다. 화려한 외양과 달리 자존감이 낮은 윤선이 차돌처럼 단단한 수영에게 반해 그를 돕는 과정이 설득력있게 묘사됐다.
“처음 대본을 읽어보니 정윤선 혼자 튀는 거예요.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이 컸죠. 원래 연기할 때 엄청 준비하거든요. 연진이 캐릭터도 모든 장면, 표정 하나하나 계산했어요. 꿈틀대는 눈썹, 씰룩이는 입술, 격한 감정까지 전부 다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냥 본능적으로 움직였어요. 극중 빌런 앤디(지창욱)와 싸우고 욕하는 장면도 전부 애드리브예요. (웃음)”
정윤선이 하수영의 ‘에브리띵’을 좋아하듯 임지연도 ‘전도연 키즈’였다. 한국종합예술학교 09학번으로 입학했을 무렵, 전도연이 영화 ‘밀양’으로 칸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그는 오랜 시간 ‘전도연 바라기’였다.
“선배님은 학창시절 연기 전공하는 학생들의 ‘퀸’이었죠. 저도 선배님이 걸어온 길을 걷고 싶어요. ‘더 글로리’ 송혜교 선배님과 전도연 선배님 중에 한 명을 고르라면요? 이건 엄마, 아빠 중 한명 고르라는 느낌인데요. 하하.”
실상 정윤선은 임지연의 당돌한 면모가 빚어낸 캐릭터일지도 모른다. 임지연은 데뷔를 위해 당시 옥수동 산등성이에 위치한 소속사에 직접 찾아가 자신의 필모그래피를 전달했다.
그의 당찬 면을 눈여겨 본 소속사와 전속계약 뒤 데뷔작인 영화 ‘인간중독’(2014)에서는 신인으로서는 파격적인 전라연기에 도전해 화제를 모았다. 이듬해 개봉한 영화 ‘간신’(2015)에서도 다시금 노출연기를 선보였지만 같은해 SBS 드라마 ‘상류사회’를 통해 발랄한 20대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 때의 제가 있기에 늘 행복하고 감사하게 연기해요. 매 작품마다 새로운 배움을 안겨 제 연기의 밑거름이 됐어요. 그 시절이 있어서 ‘더 글로리’를 만났고 ‘리볼버’에도 출연할 수 있게 됐죠.”
임지연은 아직도 연기에 대한 욕심이 크다. 그는 “정만식 선배나 지창욱 오빠의 자연스러운 애드리브를 보면 자격지심이 생기기도 했다. 노력의 방향성이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여겼다. 대본을 수백 번 읽고 고정관념을 버리려 했다”고 털어놓았다.
군 복무 중인 연인 이도현이 영화 ‘파묘’로 먼저 1000만 배우 반열에 오른 것에 대해 “남자친구가 1000만 배우가 돼서 기쁘지만 내가 출연하는 작품도 1000만 관객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솔직한 속내를 전했다.
차기작은 JTBC 드라마 ‘옥씨부인전’이다. ‘더 글로리’ 이후 벌써 네 작품째다. 임지연은 “아직도 선택받지 못하면 어떡하나 하는 두려움이 있다. 연기할 수 있는 현장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며 “그렇기에 더욱더 좋은 사람, 좋은 배우가 되려고 한다”고 눈빛을 반짝였다. mulga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