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영화 ‘보통의 가족’엔 한국 영화계 기라성 같은 배우가 나온다. 설경구(변호사), 장동건(소와외과 교수), 김희애(프리랜서 번역가), 수현(주부)까지. 네 배우 열연이 스크린을 집어 삼킨다. 셋은 그럴듯한 직업을 가졌다.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재완(설경구 분)-재규(장동건 분) 형제 그리고 아프리카 봉사활동을 가는 재규 부인 연경(김희애 분)까지 지극히 이들은 속물이다.

극이 살아서 움직인다. 캐릭터가 입체적이다. 단면이 아닌 양면을 조명했다.

허진호 감독은 스포츠서울과 인터뷰에서 “우리가 뉴스에서 어떤 흉악범을 접한다.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는데, 직접 만나보면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다”며 “지금 ‘보통의 가족’에 나오는 주인공들은 아들 범죄를 숨기는 위선적인 인물이다. 드러난 사실만 보면 나쁜 사람이다. 반대로 인간적인 면도 있다. 어떤 부분이 많이 있고 적게 있느냐 차이”라고 말했다.

실체를 세밀하게 묘사한 작품은 토론토영화제에서 먼저 알아봤다. 박찬욱 감독은 허 감독에게 “평이 좋은데?”라며 문자를 보냈다. 여러 평 가운데서도 ‘서스펜스 스릴러’라는 리뷰가 그에게 꽂혔다. 허 감독은 “이 영화가 드라마로 보였다면 관객들이 선뜻 접하기 쉽진 않은 이야기일 수 있었다”며 “장르적인 모양새를 갖추면 관객에게 다가가기 쉬울 것이라 생각해서 좋아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이미 미국, 이탈리아 등에서 제작된 바 있다. 네덜란드 헤르만 코흐가 쓴 소설 ‘더 디너’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전 세계 누적 100만 부가 팔렸기에 부담감도 컸다. 이런 걱정은 한 번에 날린 건 이탈리아 출신 토론토영화제 관계자가 건넨 말 덕분이었다.

허 감독은 “너희 나라 영화도 있는데 왜 내 영화를 초청했냐고 물었더니 ‘당신 영화가 더 재밌다’고 답했다”며 “이미 영화, 소설로도 많이 알려져 걱정도 됐는데, 그 말이 의미가 있었다”고 웃어 보였다.

부조리 속에 나온 블랙코미디도 관객 실소를 자아내게 만든다. 나이 어린 형님 지수를 대해야 하는 연경의 신경질적인 반응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사각형의 식탁처럼 네 배우가 꼭지점에 자리하며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으며 팽팽했다. 주로 할리우드 영화에만 나오다 처음으로 한국 영화에 출연한 수현의 연기가 한몫했다.

허 감독은 “워낙 대선배 사이라 주눅이 들 수도 있는데 한 번도 그러지 않았다”며 “극 중 지수는 이들 중에서 이질적인 존재이다. 그런데도 대사하기가 만만찮았는데 툭툭 치고 잘 들어왔다”고 칭찬했다.

‘더 디너’라는 원제처럼 이 영화는 식사가 주된 시퀀스를 이룬다.

허 감독은 “두 번째 식사 장면에서 소리 지르고 감정을 표현하는 장면이 많다”며 “특히 연경의 감정선이 표출되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네 명이 셋업을 해놓고 카메라 3대로 돌리면서 정말 많이 찍었다”고 밝혔다. 풀샷, 바스트샷, 타이트샷 등을 다양하게 찍었다. 김희애는 뒷모습이 찍히는 컷에서도 열연을 펼쳐 모든 배우가 대부분의 컷을 몰입해서 찍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식사 자리에서 형제간 입장 차로 극단으로 치닫는다. 엔딩은 예상치 못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허 감독은 “엔딩은 달랐으면 했다. 매력적이었다. 다른 엔딩도 생각해 봤다. 에필로그에서 가족사진을 찍는 장면으로 마무리했다. 식상한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실제 사진기사가 하는 말에서 나오는 위화감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한국사회 교육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린다. 아이들이 이토록 잔인할 수 있는가, 어른들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묻는다.

“메시지보다 질문을 던지고 싶었죠. 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인간은 양면성이 다 있죠. 저도 있을 거고요. 교육의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일 겁니다. 수상한 일을 했는데 용서받을 수 있는가. 사람의 가치라는 것에 관해 묻고 싶었습니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