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뭐라고?” “뭐라꼬?”

딱 한 글자 차이다. 한국인은 차이를 단박에 알아차린다. 글자도 억양도 다르다. 표준어와 경상도 사투리다. 일본어도 마찬가지다. 도쿄에서 쓰는 표준어와 바닷가에 인접한 오사카 말은 억양과 쓰는 단어가 다르다.

애플TV ‘파친코2’에서 재일교포 2세 노아 역을 맡은 강태주는 한국어와 일본어를 번갈아 썼다. 한국인은 모르는, 일본인만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고향인 오사카에서는 오사카 말로, 와세다대에 진학해 표준어를 구사하는 오사카인으로 일본어를 구사했다. 단순히 일본어를 잘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너 지금 오사카 사람이 쓰는 표준말 나온 거 알아?”

옆에서 가르치던 일본인 선생님마저 웃으면서 감탄했다. 강태주는 지난 1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가진 스포츠서울과 인터뷰에서 “중학교 때부터 일본어 공부를 했다. 배우 꿈 중 하나가 일본어로 연기를 하는 것이었다”며 “이번 작품이 특별했던 건 오사카 사투리 써야 했다는 점이다. 우리로 치면 부산 사투리 쓰는 결이어서 오사카 사투리를 구사하는 선생님과 같이 생활했다”고 말했다.

선자(김민하 분)가 부산 영도에서 일본으로 떠나 정착한 곳은 오사카였다. 당시 오사카는 시골이었다.

“제가 노아를 남들보다 더 잘 해낼 수 있는 장점은 일본어를 잘한다는 거였어요. 그걸 잘 전달하고 싶었어요. 대본 초고는 영어로 나왔어요. 이후 일본어, 한국어 대본까지 3개를 동시에 놓고 봤어요. 미묘하게 톤이 달라요. 그래서 너무 재밌었어요.”

언어 장벽이 컸더라면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을 터다. JPT 1급 자격증까지 있을 정도로 일본어 베테랑이었기에 가능했다. 강태주는 “일본어를 잠깐 하는 게 아니라서 재밌었다”며 “현장에서 감독은 재일교포, 스태프는 일본인, 미국인, 한국인 다 섞여서 온 나라 언어가 다 오갔다”고 웃어 보였다.

각자의 방식으로 강태주를 대했다. 미국인은 “태주, 하이!”라며 높은 텐션을, 일본인은 허리를 숙이는 공손한 인사로, 한국인은 먹을 걸 챙겨주는 식이었다. 이런 글로벌 합작은 한 땀 한 땀 쌓아 올린 결과물로 승화됐다.

캐나다 토론토에 설치된 세트장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오사카 풍경을 그대로 옮겨놨다. 1000억 원의 제작비가 투여된 할리우드 대작인 만큼 세트장 규모와 질에서 차원이 달랐다. 강태주는 “당시 사용하던 물건들을 촘촘히 고증해 구현했고, 의상까지 빈틈없이 준비해 배우들이 몰입할 수 있게 도왔다”며 “나만 잘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웃어 보였다.

재일교포 3세인 이상일 감독도 많은 영감을 줬다. 강태주는 “이 감독님도 일본에 계시는데, 한국 이름을 쓴다. 한국인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라며 “다른 감독님보다 더 책임감 있게 작품에 임했다. 이런 것이 연기에도 당연히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노아는 20살에 갖은 정체성 혼란을 겪는다. 재일교포로서, 두 명의 아버지를 둔 것에서 정서적 갈등을 빚는다. 와세다대를 입학할 때 금전 지원을 해준 고한수가 자기 아빠일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만나 사랑하게 된 연인 아키코가 “네 아버지가 고한수지?”라는 말에 목까지 조르며 분노한다. 착하기만 했던 노아의 전례 없던 폭주다.

점잖은 목사 백이삭 아들 백노아가 아니었다. 그 순간, 폭력적이었던 사업가 고한수 아들임을 증명한 셈이 돼버렸다. 강태주는 “아키코가 그걸 알고 있다는 게 노아에게는 수치스럽고 믿고 싶지 않았다”며 “결국 고한수를 찾아간 것도 부친의 존재를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신이 내 아버지라고요.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세요!”

“사실이야.”

노아는 무너진다. 와세다대를 떠난다. 오사카 집으로 향한다. 선자에게 환한 미소로 띄운 뒤 집을 나선다. 뒤늦게 이상함을 직감한 선자는 고한수를 찾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강태주는 “노아는 매주 매달 고한수를 만나고 원조를 받으면서 하고 싶은 공부 편하게 했다”며 “반면 가족들은 해진 옷을 입고 맛있는 음식도 못 먹고 고생했다. 마음속 깊이 죄책감을 지니고, 그런 자신이 혐오스러웠을 것이다. 그런 양심의 가책이 그를 스스로 용서하지 못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노아는 거리를 쓸쓸히 떠돌다 한 가게 앞에 멈추어 선다. 자신을 써달라고 말한다. “조선인이 아니냐”는 주인 질문에 능숙한 일본어로 오가와 미나토라고 소개한다. 그렇게 운명의 ‘파친코’로 들어가며 시즌2가 막을 내린다.

“마지막에 웃으면서 파친코로 들어가요. 홀가분하다고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착하고 바른 조선인으로 사는 게 노아에게는 아주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런 허탈함과 씁쓸함이 아니었을까요.”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