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청설’은 종종 눈물짓게 만든다. 최루성 멜로도 아니건만 젊음에 대한 풋사과 내음 나는 이야기로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정서는 젊음에 대한 헌사다. 첫사랑으로 대표되는 ‘건축학개론’(2012)보다 한 단계 진보한 건 이 영화가 올곧게 나아가는 직진성 때문이다.
용준(홍경 분)이 여름(노윤서 분)에게 첫눈에 반한 감정과 설렘으로 출발한다. 사랑을 향해 직진한다. 가까워지기 위해 궁리하던 중 때마침 여름의 오토바이가 고장난다. 자연스럽게 다가가 수리를 제안한다. 용준의 친구가 오토바이 수리점을 운영한 덕분이다. 매끈하게 수리에 세척까지 마친 뒤 돌려주며 전화번호를 교환한다. 문자를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는 용준이 답장이 없는 반나절을 기다리지 못해 전전긍긍한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만들어가는 모습은 우리가 그랬던 과거이기에 미소를 자아낸다.
이 모든 과정은 수어(手語)로 진행된다. 자막으로 많은 대화가 오간다. 화려한 시각적 장치 없이도 온전히 스크린에 몰입할 수 있는 건 배우들이 빚어내는 표정 덕택이다.
자매인 여름과 가을(김민주 분)이 용준 손에 이끌려 난생처음 클럽에 간다. 음소거 상태도 쿵쿵대는 비트만 영화관을 가득 채운다. 세 사람이 우퍼가 거칠게 박동하는 스피커에 손을 대자 소거 상태에서 음악 볼륨이 서서히 커지며 클럽 분위기가 극장을 메운다. 의문 가득했던 자매 만면에 미소로 가득해진다. 영화는 관객에게 종종 이런 대리체험을 선사한다.
여름과 가을이 평행선을 그리며 날아가던 직진성은 정면으로 충돌한다. 가을은 장애인 대표선수를 넘어 일반인과 경쟁할 수 있는 수영선수로 성장한다. 여름은 가을의 꿈과 자신의 꿈을 동일시한다. 인생 대부분을 동생 뒷바라지에 헌신한다.
가을에게 남긴 부채 의식은 가스 누출 사고 뒤 울음으로 터진다. 수영실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가을이 더 괴로운 건 자신으로 인해 죄책감에 시달리는 언니 때문이다. 가을은 위로 대신 애증 가득한 손짓으로 언니 인생을 찾으라 떠민다.
밀어냈던 용준을 여름이 다시 찾는 것도 이 시점부터다. 용준 가족이 운영하는 도시락 가게에서 둘은 부모님께 사랑을 전한다. 꿈이 없던 용준도, 꿈을 찾을 여름도 서로 뜨겁게 사랑하며 성장할 서사 발판을 마련한다. 꼬여버린 실타래가 풀리며 다시 삶은 추동하기 시작한다.
오는 6일 개봉하는 ‘청설’은 심성이 고운 인물들만 존재하지 않는다. 청각장애인이 수영한 물이 더럽다며 락스로 헹구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학부모 집단도 등장한다. 영화는 판타지적인 인물 묘사로 점철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가 가진 고질적인 병폐이자 소수자에 대한 차가운 시선도 함께 보여준다.
장애인 주차구역에 차를 대지 말라며 스마트폰으로 차를 찍어 ‘민원24’에 신고하는 홍경 복수는 유쾌하기까지 하다. 날선 시퀀스를 신파가 아닌 유머로 튼 건 조선호 감독 위트다.
장애와 성소수자 등을 사회적 약자를 소재로 한 상업영화가 많아지고 있다. 독립영화에서 가능했던 소재가 이제 대중적으로 소구 된다는 건 그만큼 사회가 진일보했다는 방증이다. 이는 한국 영화가 부단히 벽을 두드린 결과다. 인간을 향한 혐오는 진실한 사랑 앞에서 부질없다. ‘청설’은 장애를 동정하지 않았다. 직진하는 사랑 이야기라 더 값어치 있는 영화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