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시작은 여행이었다. 크리에이터 빠니보틀과 김계란, 쵸단이 여행을 떠난 발리. 쵸단이 드럼을 배웠단 말을 들은 김계란이 한 펍에서 연주를 요구했다. 못 이기는 척 무대에 선 쵸단은 수준 높은 연주를 뽐냈다.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터졌다.
일본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에 흠뻑 빠져 있던 김계란은 음악 프로젝트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쵸단의 연주를 보고 머리가 번뜩였고 곧 캐스팅을 시작했다. 베이스를 배우고 있던 마젠타를 섭외했고, 틱톡에서 신비주의로 베일에 감춰져 있던 냥뇽녕냥(현 히나)을 피아노·기타리스트로 뽑았다. 일본 아이돌 출신 시연을 보컬로 뽑으면서 QWER이 완성됐다.
대형기획사가 아닌 중소기업에서 아이돌을 성공시킨다는 건 기적에 가깝다. 수없이 많은 아이돌이 탄생했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K팝 시장에서 QWER의 성과는 신화나 다름없다. 기본적으로 인기 스트리머에 J팝을 연상시키는 듣기 좋은 노래인 것도 장점이지만, 빠르게 급성장할 수 있는 배경엔 유튜브 채널 ‘QWER’의 코너 ‘최애의 아이들’이 있다.
‘최애의 아이들’은 김계란이 쵸단에게 성장형 밴드를 요청하는 것을 시작으로 각 멤버를 섭외하는 과정, 멤버들의 실력이 늘어나는 대목과 처음엔 다소 어색했던 네 멤버가 유쾌하게 관계를 형성해가는 과정이 세밀하게 담겨 있다.
성장형 밴드의 세계관이 이야기를 ‘최애의 아이들’만 따라가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실력적으로 초보나 다름없어 핸드싱크 논란이 일었던 마젠타와 히나가 각종 행사를 거듭하면서 점차 안정적인 세션으로 발전하는 지점은 뭉클하다. 팬들은 마치 자식을 키우는 심정으로 두 사람의 성장을 지켜봤다. 매일 10시간이 넘는 고행의 시간을 거친 두 멤버는 어느덧 밴드신에서도 인정할만한 실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실력파 드러머 쵸단은 더 견고해졌고, 비음이 강했던 시연은 오랜 노력 끝에 밴드와 가장 잘 어울리는 음색을 찾았다.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챔피언 스킬 키인 Q, W, E, R 어떤 것 하나 불필요한 게 없듯 모두가 자기 위치에서 제 몫을 하고 있다.
소통은 따라올 자가 없다. 팬들과 끊임없이 대화한다. ‘최애의 아이들’은 시즌2가 나왔다. 힘을 크게 들이지 않는다. 방송 중에 자연스럽게 일을 처리하는 식이다. 팬덤명을 실시간으로 팬들과 함께 정한 게 그 예다. 약 8가지 후보군 중 팬들이 가장 원한 ‘바위게’가 채택됐다. 스트리머들은 본업을 유지했다. 쵸단과 마젠타의 개인방송에서 QWER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전했다. 팬들은 밴드 아이돌이 구축되는 과정을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느낄 수 있었다.
성과는 엄청나다. 1집 싱글 앨범 ‘Harmony from Discord’ 타이틀곡 ‘디스코드’가 고속 역주행을 이뤘다. 1집 미니 앨범 ‘MANITO’의 ‘고민중독’ 정주행의 발판이기도 했다. ‘고민중독’은 멜론 차트 3위까지 올랐다. 이후 각종 챌린지로 끊임없이 밈을 만들었다. 위문 공연, 대학교 축제 등 무대가 있는 곳이라면 가리지 않고 다녔다. 팬들과 호흡은 더 자연스러워졌고, 실력도 안정을 찾았다.
2집 ‘Algorithm‘s Blossom’은 시작부터 치고 나갔다. 타이틀곡 ‘내 이름 맑음’은 멜론 차트 2위까지 올랐다가 7위를 유지 중이다. 로제·에스파·지드래곤 등 글로벌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지난달 9일 방송된 지난 9일 방송된 MBC M, MBC every1 ‘쇼챔피언’에선 데뷔 첫 음악방송 1위도 차지했다.
겨우 2집 가수인데 행사 곡이 풍성하다. ‘디스코드’ ‘내 이름 맑음’ ‘가짜 아이돌’ ‘지구정복’ ‘안녕 나의 슬픔’ ‘고민중독’으로 이어지는 리스트는 신예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현장을 찾은 대다수 팬이 떼창이 가능하다. 팬들은 목이 찢어지라고 노래를 따라부른다.
성장은 진행 중이다. 완성까진 아직 갈 길이 멀다. 특히 밴드신에선 주요 멤버가 직접 작곡과 작사를 해야만 인정하는 풍토가 있다. QWER은 아직 작사에만 참여 중이다. 자기 음악 세계를 직접 만들기까진 시간이 다소 걸릴지 모르나, 1년 사이 엄청난 성장을 이뤘단 점에서 기대할 지점이 더 많다.
성장의 기반은 인정이다.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다는 걸 아는 멤버들은 끊임없이 악기와 싸웠다. 물집이 잡히고 터지고,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아 각종 주사와 씨름하던 멤버들은 어느덧 어엿한 밴드로 거듭났다. 기타와 드럼, 키보드로 ‘지구정복’까지 이루겠다는 QWER. 지칠 줄 모르는 QWER의 여행길은 맑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