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모든 걸 다 가진 남자는 허황된 판타지다. 요즘 여자에게 사랑받는 남자의 키워드는 다정함이다. 능력 있는 여자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은은하게 돕는 남자 캐릭터가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SBS ‘나의 완벽한 비서’ 유은호 역의 이준혁과 JTBC ‘옥씨부인전’ 천승휘 역의 추영우다.

◇‘나완비’ 이준혁, 단숨에 찾아온 따뜻한 햇살

유명한 구전에서 추위에 떠는 나그네의 외투를 벗긴 건 매서운 바람이 아닌 따뜻한 햇살이었다. ‘나의 완벽한 비서’ 속 유은호는 구전의 태양처럼 부드러움과 유능함으로 다가온다. 그 강점은 관계에서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 냉소적으로 변한 강지윤(한지민 분) 대표의 마음마저 연다.

강지윤과 유은호는 대표와 비서의 관계다. 유은호는 비서의 역할을 완벽히 수행한다. 업무적인 건 당연하고, 늘 조급하고 정리정돈이 되지 않는 등 강지윤의 개인적인 단점마저 보완한다.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척척 가져다주고, 홀로 회사에서 자고 있을 땐 이불을 덮어준다. 혹시나 부담스러울 수 있는 상황에선 “덕분에 다행이다”는 말로 분위기를 풀어낸다. 업무 외에 관계를 맺는 것을 거부해 온 강지윤은 점차 유은호에게 스며든다.

단순히 로맨틱한 비서를 넘어 인간적인 면모와 깊은 감정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 ‘나의 완벽한 비서’는 3회만에 시청률 10%대를 돌파했으며, 꾸준히 상승세 중이다.

◇‘옥씨부인전’ 추영우, 인생을 건 순애보

외조하는 남성 판타지는 ‘옥씨부인전’ 천승휘도 채우고 있다. 옥태영(임지연 분)이 노비 구덕이였던 시절부터 흠모해온 천승휘는 옥태영의 삶을 유지하는 데 온 몸을 다 바친다. 양반 성윤겸(추영우 분)과 비슷하게 생긴데다 타고난 예인인 천승휘는 위기 때마다 기지를 발휘, 옥태영과 부부로 살아간다.

전면에 나서지 않고 뒤에서 외지부로 일하는 아내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것은 천승휘의 특별한 사랑법이다. 집안 살림살이 점검은 물론이고 장부 기록도 훌륭히 도맡는다. 외지부 업무에 지치거나 마음이 약해지면 옥태영의 손을 잡고 “넌 최고야”라며 자존감을 지키는 데도 일조한다. 옥태영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짠’하고 나타나는 새로운 왕자님인 셈이다.

임지연이 타이틀롤로 나선 ‘옥씨부인전’은 꾸준히 10%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임지연의 대표작이 ‘더 글로리’가 아닌 ‘옥씨부인전’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반응이 긍정적이다.

◇파스타가 아닌 된장찌개…진짜 필요한 건 현실적인 도움

두 캐릭터의 인기는 드라마의 주 소비층인 여성 시청자들이 원하는 왕자님 콘셉트가 바뀌고 있다는 분석이다. 능력 있는 여성이 늘어난 요즘 ‘날 먹여살릴 남자’가 아닌 ‘내가 일을 잘 하도록 돕는 서포터’가 새로운 왕자님으로 부각하고 있다는 의미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두 캐릭터의 인기 요인은 ‘현실적인 판타지’다. 모든 걸 알아서 해주는 돈 많은 남자가 아니라, 내 옆에서 내가 필요한 걸 도와주는 사람”이라며 “‘나의 완벽한 비서’에서 유은호가 해주는 음식은 파스타가 아닌 된장찌개다. 강지윤에게 더 필요한 음식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변화가 포착된다”고 말했다.

이어 “일하는 여성들이 원하는 건 조금 더 잘 수 있는 상황, 내 대신 밥을 해주는 누군가가 있는 것이다. 이준혁과 추영우는 능력 있는 여성 옆에서 그들이 조금이라도 쉴 수 있게 틈을 마련해주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