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신비가 무대에 서기 전에 뭉클해졌어요. 위로하면 더 울거든요. 그래서 원숭이를 보여줬어요. 다행히 울지 않고 오프닝에 올랐어요” (엄지)

데뷔 10주년이라는 상징 때문일까, 아니면 무게감이었을까. 그룹 여자친구는 오프닝부터 ‘오늘부터 우리는’ ‘너 그리고 나’ ‘귀를 기울이면’까지, 히트곡을 몰아쳤다. 퍼포먼스는 더 열정적이었다. 단 한 소절도 흔들림이 없었고, 귓가엔 우리말 가사가 슬며시 흘러들어왔다.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는 게 느껴졌다. 팬덤 버디도 전투적이었다. 응원하는 목소리에 강한 힘이 실렸다.

뜨거운 열기가 흐르는 중에도 벌써 10년을 맞이한 여자친구의 콘서트를 아우르는 키워드는 ‘뭉클함’이다. 4년 전 불분명한 분위기 속에서 계약이 종료되면서, 멤버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완전체를 사랑하는 팬들에겐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을 것. 여자친구는 각각의 얼굴로 개인 행보를 이어왔다. 완전체로 무대에 서는 건 요원한 일처럼 보였다.

팬들의 사랑을 잊지 않고 10이라는 숫자에 맞춰 돌아왔다. 완전체를 기다린 팬들에게 있어 17일부터 19일까지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진행된 여자친구 10주년 콘서트 ‘시즌 오브 메모리즈(Season of Memories)’는 특별한 순간일 수밖에 없다. 따뜻한 애정이 흘러넘치는 이 순간을 앞으로도 또 만끽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공기가 흘렀다. 팬들도 아티스트도 시간이 지날수록 애틋해졌다.

리더 소원은 “우리는 꼭 또 만나자. 4년 전 많은 일이 있었지만, ‘버디’는 답답했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또다시 좋은 날을 보내게 됐고, 그러니 무거운 마음은 조금 잊고 행복하기만 했으면 좋겠다.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여자친구는 대표적인 ‘중소돌의 기적’으로 통한다. 5명도 안 되는 직원의 규모로 시작한 여자친구는 몇 차례 데뷔가 늦춰지는 등 빛을 받기까지 불안한 순간이 많았다. 하지만 2015년 1월 데뷔곡 ‘유리구슬’에 이어 ‘오늘부터 우리는’ ‘시간을 달려서’ ‘밤’ 등 매 앨범 메가 히트곡을 쏟아내며 최정상 걸그룹으로 발돋움했다.

예린은 “무대에서 멤버들과 눈을 마주치는 게 행복하다는 걸 알게 돼 더 많이 마주치려 했다”며 “신인 때 ‘우리가 1위 할 수 있을까, 콘서트는 열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어느덧 10년 차가 됐다. 콘서트도 멋지게 할 수 있는 그룹이 돼 행복하다. 우리가 어떤 길을 가든 항상 빛이 돼 달라”고 솔직하게 말했다.

여자친구를 대표하는 키워드는 ‘파워 청순’ ‘격정 아련’이다. 청순한 이미지지만 한치의 오차 없는 파워풀한 칼군무를 앞세웠고, 모두가 메인보컬을 해도 손색없는 실력파 가창력은 듣고 있기만 해도 울컥해지는 감동을 낳았다.

10주년 콘서트는 그간 정체된 것처럼 보인 여자친구의 시간이 멋지게 흘러왔다는 걸 증명한 순간이기도 했다. 당분간 국내에선 함께 만날 수 없다는 걸 안 여자친구는 마지막 순간 눈물을 참지 못했다. 객석에서도 눈가를 훔치는 팬들이 여럿 보였다. 흔히 말하는 팬들과 아티스트의 사랑이 실현되는 장면이었다.

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사하고자 기획된 이번 콘서트에서 여자친구는 3일간 9000석을 모두 채웠다. 그리고 곧 3월 해외로 향한다. 9일 오사카, 11일 요코하마, 14일 홍콩, 22일 가오슝, 29일 타이베이 등 5개 도시에서 아시아 투어를 개최하며 오래 기다린 해외 팬들을 찾아간다.

“행복했을 시간이었겠지만, 마음속 어딘가 묻어났을 그리움, 원망도 공존했을 것 같아요. 이 시간을 통해서 헝클어졌던 감정들이 많이 정리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저희의 시간은 절대 정체되지 않고 흘러가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항상 사랑해줘서 고맙습니다.” (엄지)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