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혜은이는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을 칠십 평생 경험했다. 1970년대 후반 ‘혜은이 신드롬’을 일으킨 시대의 아이콘에서 전(前)남편의 사업 실패와 이혼으로 추락한 경험까지, 가시밭길을 헤쳐가며 다시 대중 앞에 섰다.

혜은이는 지난 24일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데뷔부터 ‘역시 혜은이야, 혜은이는 달라’라는 말이 나를 옥죄었다. 공연을 해도 방송을 해도 마찬가지였다”며 “스스로 들들 볶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나이 칠십이 되니 욕심을 내서 뭐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걸 내려놓으니 ‘역시 혜은이야’라는 말을 이제 들어도 자유롭다. 너무 좋다”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모르실 거야’(1975) ‘진짜 진짜 좋아해’ ‘뛰뛰빵빵’ ‘감수광’(1977) ‘제3한강교’(1979)까지 작곡가 길옥윤과 호흡을 맞춘 곡은 연이은 히트를 하며 국민가요로 등극했다. 당시 인기 척도였던 MBC 10대 가수 가요제에서 1977년과 1979년에 가수왕에 오르며 ‘혜은이’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문제는 이름이 가진 무게감이었다. 전남편이 ‘혜은이’ 이름에 기대 여기저기서 돈을 끌어다 사업 자금에 털어 넣었다. 결국 커다란 무게추가 돼 혜은이를 낭떠러지로 떠밀었다. 빚 100억 원을 자그마치 30년간 갚아냈다.

혜은이는 “주위의 내 상황이 내 힘으로 일어설 수 없는 지경까지 갔다. 자괴감도 들고 자신감도 없고 자존심도 상했다. 그 모든 말이 나에게 해당하는 말이었다”며 “누가 옆에서 해줄 수가 있겠나.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마음으로 일어섰다”고 담담히 말했다.

“제일 비참했었던 건 노래를 안 하면 먹고 살 수 없을 때가 있었으니까요. 그때 그런 것들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죠. 그래도 다행스러운 건 지금 그때 이야기를 담담하게 할 수 있다는 거죠. 저도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제가 기특하고 잘 살아왔다고 자부해요.”

손을 내민 건 배우 박원숙이었다. 혜은이는 “언니와 동병상련의 아픔을 함께해서인지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게 있다”며 “‘같이 삽시다’ 방송하기 전에 서로 껴안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회상했다.

이런 숱한 어려움을 겪어왔기에 인생 선배로서 후배 가수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본인들이 걸어가는 길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어려운 환경이 있더라도 자신의 지탱해 준 이름의 자존감을 갖고 가라고요. 제가 인생 끝자락에서도 붙들고 온 건 ‘혜은이’라는 이름의 자존심이었어요.”

고비마다 노래를 놓지 않은 건 자존감이었다. 혜은이는 “안타까운 비보를 들을 때는 가슴이 너무 아프다”며 “스스로 자기 멘탈을 굉장히 강하게 해나가는 훈련을 해야 한다. 말로는 이렇게 해도 정작 힘든 순간이 되면 여유가 없다는 걸 안다. 그래도 마인드 컨트롤 자꾸 해야 한다. 저도 스스로 위로하는 법을 배우며 순간을 견뎌왔다”며 대선배로서의 격려를 전했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