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고척=박연준 기자] 런다운 10회, 숨이 턱에 찼다. 사즉생 생즉사(死卽生, 生卽死)를 뒤집는 투혼을 발휘했다. 살겠다는 의지가 일촉즉발의 위기를 이겨냈다. 불혹을 앞둔 이지영(39·SSG)이 베이스를 베고 누워 ‘웃음폭탄’을 터트렸다. 사선(死線)에서 살아난 장면이 웃음폭탄인 이유가 있을까.

상황은 이랬다.

3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키움과 KBO리그 정규시즌 원정경기에 8번타자 포수로 나선 이지영이 진기명기의 주인공이 됐다. 2회초 1사 후 중전안타로 출루한 이지영은 곧바로 상대 선발 김윤하의 견제에 걸렸다.

투구 템포가 길어지자 도루를 감행했는데, 키움 포수 김재현이 견제를 지시한 게 뜻하지 않은 사건(?)의 발단이 됐다. 키움 선발 김윤하가 발을 푼 뒤 2루로 송구했다. 2루로 내달리던 이지영은 눈앞에서 포구하는 키움 2루수 송성문을 발견한 뒤 발걸음을 되돌렸다.

쉽게 끝날 것 같던 런다운플레이는 무려 10차례나 이어졌다. 2루수에서 1루수로, 다시 유격수-1루수로 이어질 때까지 이지영은 1,2루 사이를 계속 오갔다.

1루수 최주환이 2루에 들어온 3루수에게 공을 건넸고, 다시 1루에 있던 2루수가 공을 받아 2루에 있던 3루수에게, 이 공이 다시 1루에 있던 2루수에게 또 1루수에게 토스될 때까지 무려 아홉차례 유턴이 이어졌다.

이지영이 귀루하려던 순간, 2루에 있던 1루수 최주환이 1루에서 협살에 나선 유격수 김태진에게 던진 공이 글러브를 맞고 마운드 방향으로 굴절됐다.

이 틈을 타 2루로 다시 방향을 바꾼 이지영은 마치 다이빙 선수가 입수하듯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감행해 원하던 베이스를 점령했다. 런다운 10회를 꽉 채운 순간이기도 했다.

심판의 세이프 콜을 들은 이지영은 곧장 고척돔 천장을 보고 베이스를 베개 삼아 벌렁 누웠다. 그의 가슴이 빠르게 들썩였다.

3루 더그아웃에 있던 SSG 선수들인 큰 환호와 박수, 함박웃음으로 이지영을 응원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3루 관중석을 가득 채운 SSG 팬들도 ‘승리(?)의 함성’을 2루에 누워있는 이지영에게 보냈다. 이 순간만큼은 SSG의 승리 분위기였다.

개막 이후 승승장구하던 SSG는 최근 상승세가 한풀 꺾였다. 고척 원정에서 내리 패해 살짝 위기감마저 감돈다. 침체한 분위기를 이지영이 깨웠다.

‘투혼’이라는 건, 결국 팀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뜻. 포기하지 않으면 길이 생긴다. 베테랑이 온몸으로 보여줬다. 그 투혼에 SSG 선수들의 움직임이 개막 시리즈 때처럼 경쾌해졌다. 결과는 8-2 완승이다. duswns0628@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