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선=장강훈 기자] “썩 괜찮습니다.”

추천은 받았지만, 사실 기대감이 크지는 않았다. ‘지방 소도시에서 제작한 공연이 다 비슷하지 않을까’라는 선입관이 있던 것도 사실. 극장에 들어섰을 때 생각보다 큰 무대에 한 번, 눈물을 쏟으며 악단장을 찾아 “연출가를 만날 방법이 있겠느냐”고 묻고 있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이름도 생경한 ‘뗏군’을 알게된 점이나, 강원도 정선이 ‘아리랑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건 ‘올해의 발견’이다. 골프 취재갔다가 대한민국 전통 소리극에 매료된, 말그대로 ‘성공적인 일탈’이다.

◇“왜, 정선에서만 하나요?”

정선군립아리랑예술단은 매주 토요일 오후 두 시에 강원도 정선 아리랑센터 아리랑홀에서 소리극 ‘뗏꾼’(연출 이길영)을 공연한다. 진용선 정선아리랑연구소장이 고증하고, 태어날 때부터 정선아리랑을 구전으로 듣고 자란 ‘화전민의 후예들’이 직접 소리를 한다. 이길영 연출가는 “정선아리랑의 정서를 소리로 표현하려면, 이 지역에서 나고 자란 분들이어야 했다. 외지 사람이 알아듣든 말든 정선말(방언)로 대사를 쓴 것도 정선아리랑의 맛과 멋을 오롯이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소리극’은 뮤지컬과 비슷하다. 연기와 춤, 노래가 어우러진 종합 엔터테인먼트인데, 노래를 서양음악이 아닌 우리 가락으로 부른다. 아리랑 가락에 상황과 감정을 얹어 다양하게 변주해 웃음과 눈물, 환희와 감동, 풍자와 해학 등을 가슴으로 전달한다. 배우들의 열연과 춤사위는 타악과 태평소, 거문고, 가야금, 해금, 대금, 생황 등과 어우러져 웅장함을 더한다.

휴식시간이 없는 대신 주연배우 중 한 명이 마치 마당놀이하듯 관객과 호흡하고, 화려한 난타와 군무는 정선 아리랑센터가 마치 예술의 전당으로 느껴질 만큼 몰입감을 안겨준다.

정선에 묻힐 공연은 아니라는 확신이 들 정도였다.

◇“지명, 인물 최대한 살렸지요”

이길영 연출가는 “아직 다른 지역에서 공연할 정도로 유명하지 않다”면서도 “널리 알려져서,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하고 싶다”며 간절한 눈빛과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보냈다.

‘뗏꾼’은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소나무를 베어다 떼(뗏목)을 띄워 한양까지 내다 팔던 사람을 뜻한다. 정선은 질 좋은 소나무가 유난히 많아 경복궁 중수 때 특히 활황을 누렸다. 정선에서 경성까지 거친 여울에도 휩쓸리지 않고 무사히 다녀오면, 엄청난 돈을 벌었다. 이 때 탄생한 단어가 바로 ‘떼돈’이다.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를 배경으로 정선 최고 뗏꾼인 ‘영길’과 떼몰이를 막 시작한 ‘동식’이 은밀한 거래를 제안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악질 친일파 ‘박춘금’이 개발하던 금광에서 일하던 광부들이 몰래 금괴를 빼돌려 모처에 감췄는데, 이 금괴를 뗏목에 싣고 독립군에게 전달하는 여정을 그렸다. 사랑과 배신, 숭고한 희생 등이 70여분 간 동강의 거센 물결처럼 휘몰아친다.

아우라지나 상투비리, 황새여울, 만지주막 등 지명뿐만 아니라 전산옥, 박춘금 등 실존인물도 등장해 픽션과 논픽션 경계에서 유려하게 떼몰이한다. 이길영 연출가는 “아리랑이 우리 고유의 가락이 된 건 뗏꾼들 덕분이다. 정선아라리(아리랑)는 원래 노동요여서, 떼몰이하면서, 경복궁 중수에 동원됐을 때 구전으로 흥얼거리던 게 전국으로 확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목숨걸고 지킨 우리 가락, 이어야죠!”

아리랑 중에서 현재까지도 향토민요로서 민중들 사이에서 가장 활발하게 전승·전파되는 건 정선아라리다. 아라리를 부르는 정선사람들은 정선아리랑을 ‘소리’ 또는 ‘아라리’라고 한다.

정선 출신인 이길영 연출가가 정선출신 소리꾼을 모아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뗏꾼들의 이야기를 ‘소리극’으로 내놓은 건, 정선아리랑 가락 속에 담긴 선열들의 값진 숨결과 의로운 정신을 지키겠다는 신념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혼(魂)이 깃든 아리랑을 원형 그대로 지키려는 사람들의 신념은 “내 말했잖아. 떼도 인생도 바우가 없는 물마루로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늘 빨리가는 게 정답은 아이라고. 이래 천천히 갈라치면, 떼를 가로 몰아야 한다니”라는 대사로 대변한다.

정선아라리 가락이 물길 따라 서울을 오간 뗏꾼들의 입에서 퍼진 것처럼, 소리극 ‘뗏꾼’도 관람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지기를 공연에 참여한 모든 이가 바라고 있다.

참고로 아리랑센터는 아리랑박물관과 함께 있어 경기, 밀양 등 전국에서 불리는 지역 아리랑을 감상할 수 있다. 또 공연 관람료(5000원)는 지역화폐격인 정선아리랑 상품권으로 돌려준다. 상품권은 정선 5일장이나 관내 마트 등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다.

혹평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 또한 ‘소리극 뗏꾼’의 특장점이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