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원성윤 기자] 요리는 재료를 더하는 과정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과정이라 했던가.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요리 계급 전쟁’ 시즌2가 보여주는 미식의 세계관이 딱 그렇다. 화려한 플레이팅과 자극적인 식재료가 난무하는 서바이벌 판에서, 이번 시즌이 택한 생존 전략은 역설적이게도 ‘절제’와 ‘본질’이다.

◇ 안성재의 ‘오버싱킹’, 제자에게 더 가혹했던 ‘뺄셈의 회초리’

안성재 심사위원의 심사평은 이번 시즌을 관통하는 하나의 철학이 됐다. 그는 복잡한 기교로 점철된 요리 앞에서 “생각이 너무 많다(Overthinking)”며 가차 없이 칼을 댔다.

가장 극적인 대비를 보여준 장면은 사찰음식과 먹물 요리의 평가에서 나왔다. 사찰음식의 명장 선 스님이 내놓은 요리 앞에서 안성재는 눈을 반짝였다. 화려한 소스나 가니쉬는 없었다. 하지만 그는 “절제를 했는데 (잣의) 향이 너무 향긋하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른 재료들이 주인공인 잣을 가리지 않고, 오히려 은은하게 받쳐주며 고소함의 깊이를 더했기 때문이다. 이는 “재료가 가진 본질에 집중할 때 가장 강력한 맛이 나온다”는 그의 요리 철학과 맞닿아 있다.

반면, 안성재가 운영했던 레스토랑 ‘모수’ 출신으로 화제를 모은 흑수저 셰프 ‘트리플스타 킬러’에게는 냉정한 평가가 내려졌다. 그는 칠흑같이 검은 ‘오징어 먹물 리조또’ 위에 바삭한 식감을 극대화한 ‘오징어 튀김’을 가니쉬로 얹어, 스승 못지않은 시각적 강렬함과 식감의 변주를 꾀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칭찬이 아닌 “오버싱킹(Overthinking)”이라는 뼈아픈 지적이었다. 안성재는 “리조또 자체 완성도가 높다. 쌀의 익힘이나 파마산이 굉장히 조화로운데, 전체적인 구성에서 (밸런스가 깨졌다.) 바삭한 게 올라가 식감을 내려는 게 오버싱킹이다. 이해가 안 된다. 욕심을 부렸다”고 지적했다.

보여주고 싶은 테크닉이 너무 많아 정작 요리의 본질인 조화가 깨졌다는 취지였다. 옛 스승 앞에서 실력을 증명하고 싶었던 ‘트리플스타 킬러’의 과한 의욕이 오히려 독이 된 순간, 시청자들은 안성재의 ‘절제미’가 타협 없는 철학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 ‘예능인’ 백종원은 없다…침묵으로 쌓아 올린 ‘권위’

이러한 ‘뺄셈의 미학’은 백종원 심사위원에게서 정점을 찍는다. 우리가 알던 ‘방송 천재’ 백종원은 이번 시즌에 없다. 특유의 구수한 농담, 긴장을 풀어주던 너스레, 과장된 리액션이 싹둑 잘려 나갔다. 카메라 역시 그의 표정보다 접시에 담긴 요리를 비추는 데 더 오랜 시간을 할애한다.

제작진의 의도는 명확해 보인다. 시즌1을 거치며 높아진 시청자의 눈높이, 그리고 공정성에 대한 엄격한 잣대를 의식해 백종원이라는 캐릭터에서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과감히 거세한 것이다. 그는 오직 맛의 설계와 조리 논리만을 파고든다. 역설적이게도 백종원의 입수가 줄어들자, 그가 내뱉는 한 마디의 무게감은 배가됐다. 그의 침묵은 심사위원으로서의 권위를 단단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됐다.

◇ ‘히든 백수저’라는 변수, 계급장 떼고 붙는 ‘진검승부’

심사위원이 뒤로 물러선 자리는 셰프들의 치열한 서사로 채워졌다. 특히 이번 시즌 도입된 ‘히든 백수저’ 룰은 기존의 계급 구도를 뒤흔드는 ‘메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최강록, 김도윤 등 이미 정점에 오른 대가들이 계급장을 떼고 1라운드 흑수저들과 진흙탕 싸움을 벌인다.

이는 단순한 재미를 넘어 ‘공정성’에 대한 제작진의 대답이다. “유명하면 살아남는다”는 서바이벌의 암묵적 룰을 깨부수고, 오직 접시 하나로만 평가받겠다는 의지다. 이들의 생존 여부가 흑수저들의 운명과 직결되는 잔혹한 시스템은 시청자들에게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긴장감을 선사한다.

◇ ‘방송용 셰프’? 편견을 요리로 증명하는 사람들

시즌2의 라인업이 화려한 만큼 우려도 컸다. ‘냉장고를 부탁해’,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등 예능에서 이미지가 소비된 셰프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흑백요리사2’는 이를 영리하게 이용했다. 대중에게 익숙한 ‘방송인’의 껍질을 벗기고, 그 속에 감춰져 있던 ‘요리사’의 야성을 끄집어냈다.

초반부터 휘몰아치는 감정의 서사도 인상적이다. 시즌1이 후반부에야 인물에 집중했다면, 이번엔 시작부터 엑셀을 밟았다.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허브를 올리는 ‘술 빚는 윤주모’, 땀방울 맺힌 ‘아기맹수’의 간절함은 시청자를 즉각적으로 몰입시킨다. 이것은 쇼가 아니다. 인생을 건 장인들의 투쟁이다.

결국 ‘흑백요리사2’는 화려함을 덜어내고 진정성을 채우는 방식으로 진화했다. 안성재의 날카로운 지적, 백종원의 무거운 침묵, 그리고 계급장을 뗀 셰프들의 땀방울. 이 삼박자가 어우러지며 요리 서바이벌은 다시 한번 진화했다. “맛에는 계급이 없다”는 그들의 슬로건이 비로소 완성된 느낌이다. socool@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