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도파민이 터진다. ‘쉭 쉭’ 대는 거친 숨소리와 함께 휙휙 내지르는 주먹이 허공을 가르고, 이내 ‘팡 팡’ 하는 타격음이 고막을 때린다. 얼굴에 제대로 된 유효타가 꽂힐 때마다 객석에선 ‘와!’ 하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숨 죽이며 상대의 눈빛을 읽고, 피하고 때리기를 반복하는 사이 피와 땀이 링 위에 흩뿌려진다. 폭력에 대한 거부감으로 주먹싸움을 기피하던 사람들조차 tvN ‘아이엠 복서’가 선사하는 원초적 즐거움에 빠져든다.

‘아이엠 복서’는 액션 스타가 아닌 ‘30년 경력의 복싱 관장’ 마동석이 직접 판을 짠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단순히 치고받는 싸움 구경이 아니다. 링 위에서 펼쳐지는 선수들의 투지와 서사, 복싱이라는 스포츠가 가진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대중에게 알리겠다는 의도로 기획했다.

여느 스포츠 예능이 그렇듯, 침체된 종목의 열기를 다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 아래 재야의 고수들이 집결했다. 전직 챔피언, 생활 체육인, 스타 복서 등 계급장을 뗀 승부가 펼쳐진다. 명현만, 김동회, 김민욱 등 타격계 레전드라 불리는 선수들이 무게 중심을 잡고, 줄리엔강과 장혁, 육준서처럼 스포츠에 진심인 셀럽들도 입성했다.

“과연 재밌을까?”라던 일각의 의구심은 첫 회부터 사라졌다. 체급에 맞는 선수들끼리 1대1 정공법 대결을 펼치는 순간부터 현장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패배가 곧 탈락으로 이어지는 서바이벌 룰은 도파민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닭장처럼 좁은 케이지에서 펼쳐지는 인파이팅, 아웃복서의 발을 묶어두는 직선형 링에서의 태그 매치, 빗물이 쏟아지는 수중전 등 ‘남자의 낭만’을 자극하는 장치가 곳곳에 배치됐다. 이후에는 1대1대1 무한 라운드 미션까지 만들면서, 복싱의 다양한 재미를 추구했다.

잘 싸우는 사람만 빛나는 무대가 아니다. ‘맷집의 미학’도 존재한다. 두들겨 맞으면서 버티는 자도 아름답다. 선수 출신 국승준을 상대한 소방관 김동현은 수없이 유효타를 허용하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경기를 마쳤다. “조금이라도 더 버티면 소방관에 대한 믿음이 커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버텼다”는 그의 인터뷰는 승패를 떠난 묵직한 감동을 선사했다.

대본 없는 각본, 변주된 링 환경, 참가자들의 진정성은 시청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실제 복싱 경기의 살벌한 긴장감에 예능적 연출이 절묘하게 결합됐다는 평가다.

반환점을 돈 ‘아이엠 복서’의 화제성은 뜨겁다. 글로벌 OTT 플랫폼 디즈니+ TV쇼 부문에서 월드와이드 7위(12월 1주차), 6위(12월 2주차)에 오르는 등 해외 반응도 심상치 않다. 복싱이 비인기 종목임을 감안하면 괄목할 만한 성과다.

유튜브 등 숏폼 플랫폼은 이미 ‘아이엠 복서’가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링을 등진 채 상대 공격을 읽고 간결한 카운터를 꽂는 김민욱의 테크닉, 파괴적인 힘으로 상대를 밀어붙이는 명현만의 파워, 엄청난 피지컬과 동체 시력으로 유효타를 피해내는 김동회의 디펜스는 그 자체로 예술이다. 주요 회차 조회수가 100만 회를 상회하는 가운데, 명현만과 줄리엔강의 헤비급 맞대결은 450만 뷰를 돌파했다. 남성을 넘어 여성 시청층까지 입소문이 돌고 있다.

우승을 노렸던 90인의 복서 중 이제 ‘진짜 승부사’라 불릴 5인이 남았다. 데스매치를 통해 3인이 더 추가된다. 경력과 배경을 뒤로한 채 최고의 선수들이 마지막 우승을 향해 주먹을 뻗는다. 링 위에선 “쳐 봐!”라며 상대를 도발하지만, 종이 울리면 죽을 힘을 다해 싸운 상대를 껴안는 모습에서 뭉클함이 피어오른다.

진정한 ‘스포츠맨십’이 무엇인지 ‘아이엠 복서’가 증명하고 있다. 스포츠 예능의 홍수 속에서, 복싱만큼은 재미와 감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확실히 잡았다. intellybeast@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