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강동현 기자] “다음 월드컵엔 꼭 등번호를 달고 와야겠다.”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한국 대표팀 단체 사진을 찍을 때 어찌나 아쉬운 마음이 컸던지 이 말을 수만 번 되뇌며 독을 품은 선수가 있었다. 안면 부상 손흥민이 혹시 못 뛸 경우를 대비해 데려간 예비 엔트리 오현규(25)였다. 카타르에서 돌아오자마자 집에 등번호 없는 대표팀 유니폼을 걸어놓고 각오를 다진 그였다.

그 꿈을 이룰 순간이 머지않았다.

지난겨울 이적 시장에서 벨기에 헹크를 떠나 튀르키예 쉬페르리그 명문팀 베식타시로 이적한 오현규가 제대로 물을 만났다.

지난 9일 알라니아스포르전 오버헤드킥 데뷔골, 16일 바샥셰히르전 1골-힐킥 1도움에 이어 23일 괴즈테페전에서 대포알 중거리슛으로 데뷔 뒤 3경기 연속골을 터뜨렸다. 구단 창단 123년 만에 새 역사를 썼다.

슛은 시속 122㎞. 무시무시한 속도에 베식타시 세르겐 얄츤 감독마저 충격에 빠져 무릎을 꿇었다. 지난 20년간 쉬페르리그에서 가장 빠른 슛이었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 스페인전 황보관의 캐넌포(시속 114㎞)보다 더 빨랐다.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을 채 넉 달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대표팀은 든든한 원톱 스트라이커를 얻었다.

오현규에게 4년 전 카타르에서의 경험은 성장하는 데 큰 동기부여가 됐다. 비록 대표팀 경기를 뛰지 못하고 벤치가 아닌 관중석에서 지켜봐야 했지만, 팀 막내로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27번째 선수’를 자처하며 궂은일을 했다. 진지한 워밍업, 슛 비결 등 월드 클래스 손흥민과 함께 훈련하며 깨달은 모습을 몰래 메모장에 적어놓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대표팀에서 골잡이의 상징인 등번호 ‘9번’을 달고 그라운드를 누볐다. 지난해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에서만 4골을 몰아치며 한국의 11회 연속 본선 진출에 힘을 보탰다.

베식타시에서도 9번을 달고 펄펄 난다. 대표팀 최전방 경쟁에서 지난 주말 경기 중 무릎 부상한 조규성(28·미트윌란), 최근 폼이 떨어진 오세훈(27·시미즈)보다 한발 앞섰다.

4년 전 월드컵 ‘예비 선수’ 오현규가 그토록 원했던 ‘등번호’를 달고 꿈의 무대를 휘저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dhk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