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지현 감독 “선수들 집중력이 벼랑 끝에서 빛났다”
한일전·대만전 패배 딛고 일어선 ‘원팀’의 저력
이제 무대는 미국 마이애미

[스포츠서울 | 도쿄=박연준 기자] “선수들이 나를 살렸다.”
한국 야구대표팀 류지현(55) 감독의 눈가가 붉게 충혈돼 있었다. 한국 야구 역사에 기록될 가장 극적이고도 잔혹한 ‘경우의 수’를 뚫어냈다. 결국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대표팀은 17년 만에 8강 결선 라운드 진출이라는 ‘기적’을 일궈냈다.
지난 호주전은 ‘5점 차 이상 승리’와 ‘2실점 이하’라는, 바늘구멍보다 좁은 진출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했다. 벼랑 끝에 선 선수들을 기적으로 이끈 힘은 무엇이었을까. 류 감독은 주저 없이 ‘준비’를 꼽았다.
류 감독은 “정말 준비를 많이 했다. 지난해 2월 감독 선임 이후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오직 이 무대만을 바라보며 달려왔다”고 운을 뗐다.
사실 이번 대회는 가시밭길이었다. 한일전과 대만전을 잇달아 패하며 사실상 탈락 위기에 몰렸다. 류 감독은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의 긴장감과 좌절감은 상상 이상이었다”면서 “특히 그동안 선수들이 느꼈을 압박감은 다 설명하기 어렵다. 그걸 이겨낸 선수들의 집중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승리가 확정된 순간, 그라운드에서 선수들과 뒤엉켜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야구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잘 참고 있었는데, 경기 끝나고 많이 울었다. 이제 눈물이 다 마른 줄 알았는데 자꾸 나온다”며 웃어 보였다.
패배의 화살이 감독을 향할 때도 선수들은 묵묵히 그를 따랐다. 류 감독은 “힘든 시간이었지만, 결국 마지막에 선수들이 나를 살렸다. 코치진과 감독을 믿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선수들에게 진심으로 고맙다. 오늘 승리는 특정 개인의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유니폼을 입은 모두가 만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적 같은 1라운드를 통과한 대표팀의 다음 목적지는 미국 마이애미다. 단판 승부로 펼쳐지는 8강 토너먼트 역시 변수의 연속이겠지만, 류 감독의 철학은 확고하다. “다시 처음부터 준비하겠다. 결국 포인트는 준비다. 어떤 변수가 닥쳐도 이를 포용하고 이겨낼 수 있도록 더 철저히 준비해서 더 높은 곳을 바라보겠다”고 다짐했다.
17년 전,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한국 야구의 기백이 도쿄돔에서 되살아났다. 류 감독의 눈물과 선수들의 땀방울로 일궈낸 ‘준비된 기적’은 이제 미국 본토에서 더 큰 반전을 준비하고 있다. duswns0628@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