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재밌는 도전이다. 누구도 이입할 수 없는 악한 인간들의 향연이다. ‘얘 좀 기댈 만한가?’ 싶으면 여지없이 악행을 저지르는 사건이 터진다. 시청자가 등장인물 모두와 철저히 거리를 두어야만 비로소 즐길 수 있는 드라마, tvN ‘대한민국에서 건물주 되는 법’(이하 ‘건물주’)의 이야기다.
선한 인물로 서사의 정당성을 채워야 한다는 공식을 제작진이 몰랐을 리 없다. 워낙 이야기가 재밌었기에 밀어붙일 수 있었다. 그 중심에는 늘 서늘한 공기를 만들며 인간의 어두운 욕망을 그려온 임필성 감독이 있었다. 임 감독이 진심을 다해 판을 깔자 국내 최고의 배우들이 지원 사격에 나섰고, 덕분에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기묘한 블랙코미디 스릴러가 탄생했다. 한 단어로 요약하면 ‘성악설의 미학’이다.
임필성 감독은 최근 서울 청담동 소재 한 카페에서 진행된 스포츠서울과의 인터뷰에서 “제작사 스튜디오329의 윤시내 대표님이 보통 분이 아니다. 흥행 경험이 없는 나를 골랐다. 내 특유의 서늘한 톤이 작품과 잘 맞을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며 “오한기 작가님의 대본은 제안받은 작품 중 월등히 퀄리티가 좋았다. 감정이입에 대한 고민이 안 된 건 아니지만, 인간의 성악설을 폭넓게 그린다는 차원에서 몹시 흥미로웠다”고 밝혔다.

◇드라마 첫 도전 “우리가 할 줄 아는 걸 해야지”
영화 ‘남극일기’(2005)로 데뷔한 임 감독은 21년 만에 처음으로 드라마 연출에 도전했다. 비교적 여유 있게 촬영에 임하는 영화와 달리 드라마는 분량이 압도적이다. 현장에서 새로운 컷을 고민하거나 부족한 환경을 기다려 줄 여유 없이 매 순간 달려야 하는 강행군이다. 그럼에도 임 감독은 특유의 기교를 발휘했다. 우당탕탕 벌어지는 ‘삑사리의 향연’ 속에서도 치밀하게 핍진성을 부여해 자극적인 이야기에 몰입도를 높였다.
“드라마의 매력은 열차가 출발한다는 데 있어요. 한 번 떠나면 되돌아갈 수 없죠. 영화는 한 컷 한 컷 여유 있게 찍는데, 드라마는 앵글을 잡으면 바로 오케이가 나야 해요. 괴롭지만 뒤를 돌아볼 틈이 없었죠. 그래도 앵글이 절대 후지지 않게 찍으려고 정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하면 비현실적인 상황도 그럴듯하게, 진짜처럼 설득할 수 있을지 끝없이 치열하게 매달렸습니다.”
OTT의 폭발적 성장 이후 영화감독들이 시리즈물로 대거 유입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영화감독의 작품이 이른바 영상의 ‘때깔’은 좋지만, 특유의 문법 차이 탓에 드라마 본연의 재미는 반감된다는 뼈아픈 지적도 존재한다.
“‘건물주’가 분명 영화적인 느낌이 있긴 해요. 하지만 주연을 맡은 하정우 배우와 처음부터 얘기했던 게 ‘드라마의 문법을 어설프게 따라 하지는 말자’는 거였어요. 그건 오만한 짓이라고요. 그냥 우리에게 주어진 없는 시간 내에 ‘12시간짜리 영화를 만들자’고 생각했습니다. 작가적 욕심보다는, 직업 감독으로서 이 긴 이야기를 끝까지 잘 운반해 내자는 장인 정신과 책임감으로 임했어요.”

◇“좋은 배우들에겐 디렉션이 필요 없어요”
선장이 올바르게 향하자, 배우들은 칼춤을 췄다. 주인공인 하정우가 중심을 잡으니 주위 인물들이 모두 살아났다. 임수정과 정수정, 김금순, 김준한 심은경, 박성일, 류아벨, 이신기, 현봉식과 같은 배우들이 반짝반짝 빛났다. 배우들에게 어떤 마법과 같은 디렉션을 한 걸까. 답은 ‘하지 않았다’였다.
“어떤 유명한 감독의 명언인데 ‘현장에서 감독이 구구절절 말이 많다는 건 그 배우가 문제가 많은 것’이라는 거예요. 이미 프로덕션 과정에서 서로 다 이해가 돼야 해요. 감독은 아주 미세한 것만 조정하면 돼요. 제가 경험했을 때 배우들이 기백을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부정적인 말보다는 긍정적인 칭찬으로 힘을 유지하는 게 더 도움되는 거 같아요. 전 따로 디렉션 없었어요. 배우들이 뛰어났으니까.” intellybeast@sportsseou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