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쿠리 투표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까지… 반복되는 무능과 책임 회피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문책, 인사 시스템 개선 등 해체 수준 실질적인 개혁 조치가 뒤따라야”

[스포츠서울 | 이상배 전문기자]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다. 국민이 한 표를 통해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정치적 권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거는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투명해야 하며, 이를 관리하는 선거관리기관은 국민의 절대적인 신뢰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국민들이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를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우호적이지 않다. 신뢰보다는 의혹이, 존중보다는 불신이 앞서고 있다. 문제는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라 반복되는 부실과 책임 회피가 누적되면서 국민적 분노가 임계점을 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국민들은 코로나19 시기 이른바 ‘소쿠리 투표’라는 초유의 사태를 목격했다. 선거 역사에 오점으로 남은 이 사건은 선거관리 체계의 허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당시 선관위는 국민들에게 사과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많은 국민들 역시 이를 일회성 실수로 받아들이고 다시는 같은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최근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는 이러한 기대를 무너뜨렸다. 선거를 총괄 관리하는 기관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소방서에 물이 부족하고 응급실에 필수 의약품이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이다. 국민들은 자연스럽게 질문하게 된다.
“도대체 선관위는 무엇을 준비했는가?”
선관위를 둘러싼 논란은 선거 관리 부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특혜 채용 의혹, 허술한 보안 체계, 전산 시스템에 대한 지속적인 불신 등 국민들이 우려하는 사안은 적지 않다. 그럼에도 선관위는 비판이 제기될 때마다 ‘독립기관’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 있는 것처럼 비쳐 왔다.
물론 선관위의 독립성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 정치권력의 개입 없이 선거를 관리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독립성이 무책임을 의미할 수는 없다. 독립성과 책임성은 서로 배치되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작동해야 할 원칙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기관이라면 국민의 감시와 검증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의무다. 오히려 독립기관일수록 더욱 높은 수준의 투명성과 책임성이 요구된다.
미국 등 선거 선진국들은 선거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유권자의 권리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다. 행정적 착오나 준비 부족이 발생하면 즉각적인 보완 조치를 시행하고, 이후 외부 감사와 의회 차원의 검증을 통해 원인 규명과 책임 추궁에 나선다. 이는 단순히 책임자를 찾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절차다.
생각해 보자. 기업은 고객의 신뢰를 잃으면 시장에서 도태된다. 공직자는 업무상 과오가 드러나면 감사를 받는다. 일반 직장인도 반복적인 실수에 대해 평가와 책임을 감수한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핵심 절차를 관리하는 기관은 왜 예외여야 하는가?
선관위는 국민 위에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선거를 관리하는 공적 기관일 뿐이다. 심판의 권위는 권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신뢰에서 나온다. 관중이 심판을 믿지 못한다면 경기의 공정성도 인정받을 수 없다.
지금 선관위에 필요한 것은 변명이 아니라 변화다. 즉, 국민이 원하는 것은 신뢰의 회복이다.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문책, 외부 감사 제도 강화, 인사 시스템 개선, 보안 체계 전면 점검 등 해체 수준의 실질적인 개혁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보여주기식 대책이 아니라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변화가 필요하다.
선관위는 이제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과연 국민의 신뢰를 지키고 있는가?”
만약 이 질문에 명확하게 답할 수 없다면, 현재의 위기는 단순한 논란이 아니라 존재 이유를 묻는 국민의 경고일 수 있다. 민주주의는 신뢰 위에서 작동한다. 그리고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질 때 민주주의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 국민은 완벽한 기관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실수를 인정하고 책임질 줄 아는 기관, 국민 앞에 겸손한 기관을 원할 뿐이다.
지금이야말로 선관위가 국민 앞에 진정한 쇄신과 개혁의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그렇지 않다면 선관위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는 더욱 커질 것이며, 결국 그것은 민주주의의 주권자인 국민이 내리는 준엄한 명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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