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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이재학은 올시즌을 앞두고 아버지 이영호(51)씨와 약속을 했다. 두자릿수 승수와 3점대 방어율을 목표로 잡고 이를 향해 끊임없이 정진하기로 손가락을 걸었다. 그는 겉으론 표현을 하지 않았지만, 정규 시즌 후 시상식장에 올라 신인왕 트로피를 거머쥐는 모습을 매일밤 상상했다.
시작은 좋았다. NC의 창단 첫 승을 기록한 뒤 승승장구했다. 팀의 첫 완봉승도 그의 몫이었다. 하지만 시즌 중 팀내 사정으로 인해 불펜으로 보직이 바뀌는 등 풍파가 따랐다. 갑자기 바뀐 보직 탓에 번번히 타자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 탓이다. 크게 신경쓰지 않고 맡은 보직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재학은 뒤에서 쓰린 속을 삼켰다. 시상식을 찾은 부친 이영호 씨는 “(이)재학이가 끙끙 앓았다. 불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 팀에 보탬이 되지 못했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재학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어렸을 때부터 키워주신 할머니를 생각하며 공을 던졌다. 프로 데뷔 때 가장 큰 기쁨의 웃음을 지어준 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며 일구일구에 집중했다. 구단은 이재학에게 다시 한번 선발 보직을 맡겼고 그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재학은 “할머니가 2년 전부터 지병으로 병상에 누워계신데, 할머니께 힘이 되어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프로야구 최우수선수(MVP), 신인선수, 각 부문별 시상식이 열린 4일. 이재학은 부푼 마음을 안고 서울행 KTX를 탔다. 그는 전 소속팀에서 친분을 쌓았던 두산 정수빈에게 물어 시상식이 열린 서울 I호텔 인근에 있는 유명 미용실을 찾았다. 시상식을 앞두고 구입한 양복의 옷 매무새도 다시 한번 고쳤다. 그는 “할머니가 TV로 보고 계실 것이기 때문에 가장 멋진 모습으로 단상에 오르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인왕 수상자에 본인의 이름이 호명된 뒤 그는 씩씩하게 계단을 올라 마이크 앞에 섰다. 신인왕 트로피를 쳐다본 이재학은 “TV로 보고 계실 할머니께 정말 감사드린다. 이 상을 할머니께 가져다 드리겠다. 반짝이는 선수가 아닌 꾸준히 빛나는 선수가 되겠다”며 활짝 웃었다.
이재학은 시상식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행사장을 떠나지 않았다. 투표를 한 언론 및 관계자석을 돌며 고개를 숙였다. 이재학은 “꿈만 같다. 지금 이 모습에 안주하지 않고 내년 시즌에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부친 이영호 씨는 “(이)재학이가 이렇게 커줘서 정말 감사하다. 중학교 때까지 몸이 왜소해 가슴이 많이 아팠는데, 그동안의 고생을 잘 참고 이겨내줬다”고 말했다. 이 씨는 “그동안 (이)재학이가 경기를 치르느라 바빠 얼굴을 마주볼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다. 오늘도 (집이 있는)대구에서 아침 일찍 올라왔는데, 발걸음이 참 가볍더라. 정말 고맙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재학은 올시즌 10승 5패 방어율 2.88(2위), 삼진 144개(5위)를 기록했고 신인왕 기자단 투표에서 98표 중 77표를 얻어 두산 유희관(13표), NC 나성범(8표)을 가볍게 제쳤다.
김경윤기자 bicycle@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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