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가타 현(일본)=글·사진 스포츠서울 김산환 여행작가] 나무와 눈, 바람이 만든 ‘겨울 조각품’ 수빙의 바다에서 노닐다.

골라 먹는 재미가 있다. 아이스크림 이야기가 아니다. 일본 야마가타현의 자랑거리인 자오 스키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무려 1300년 전부터 온천으로 이름난 마을에 생겨난 자오 스키장은 그 규모가 실로 어마어마하다. 이곳은 9개의 스키장이 뭉쳐 하나의 스키존을 형성하고 있다. 스키장 주인은 제각각이지만 ‘자오’라는 공동 브랜드를 사용한다. 그래서 단일 스키장에 속한다. 스키장이 크니 리프트도 많다. 로프웨이 3개를 포함해 무려 40개의 리프트가 있다. 슬로프는 그보다 세배쯤 많다. 이들 슬로프와 리프트는 신경망처럼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규모가 큰 탓에 웬만한 건각이 며칠 동안 헤집고 다녀도 스키장을 다 돌아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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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스키장 정상에 만들어진 수빙(樹氷) 군락지대에서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 하고 있다.

사실, 자오스키장은 수빙으로 이름이 높다. 나무에 눈이 들러붙어 만들어지는 수빙은 거대한 눈사람처럼 보여 ‘스노 몬스터’라고도 부른다. 수빙은 진시왕릉을 지키는 병마용처럼 자오 스키장이 있는 지조산(1736m) 정상부에 끝도 없이 펼쳐져 있다. 이것을 보려고 일본은 물론 눈이 귀한 동남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수빙은 눈과 바람과 나무가 빚은 겨울의 진객이다.

수빙이 형성되려면 우선 산 정상부에 삼나무와 같은 침엽수가 있어야 한다. 겨울에도 잎을 떨구지 않는 촘촘한 침엽수 가지가 그물망이 되어 눈을 붙들어 잡는다. 그 다음 적설량이 충분해야 한다. 적어도 연간 5m 이상의 적설량은 되어야 한다. 많은 눈이 내려야 나무의 기둥은 파묻고 삼각형 모양의 침엽수 머리 부분만 남겨놓는다. 이 파묻히지 않은 침엽수의 머리 부분에 눈이 집중적으로 달라붙어 거대한 눈사람으로 변신한다. 바람도 수빙을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바람은 눈이 나무에 착 달라붙게 한다. 적당한 바람이 아니다. 사정없이 부는 거센 바람이 필요하다. 그렇게 바람이 눈을 나무에 붙이면 마침내 나무는 사라지고 거대한 눈사람 모양의 수빙이 탄생한다.

세계 최대의 호설지대인 일본에서도 수빙을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 백컨트리 스키의 성지로 알려진 아오모리현 하코다산, ‘작은 하코다’로 불리는 아키타현의 아니스키장, 그리고 자오 정도가 있다. 이 가운데 규모면으로 따지면 자오가 압도적이다. 산 정상부에 펼쳐진 수빙의 바다는 인간계와 확실히 구분된다. 이 풍경은 도로를 따라 10m 높이의 눈벽을 쌓아놓는 도야마현의 다테야마 알펜루트와 함께 일본의 겨울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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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스키어가 스키를 신고 자오스키장 정상부의 수빙 지대를 거슬러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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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스키장 정상에서 내려다본 수빙의 파노라마. ‘스노 몬스터’라고도 불리는 수빙은 일본의 겨울을 상징한다.

그러나 수빙을 보는 일은 쉽지 않다. 수빙이 만들어지는 조건에서 알 수 있듯이 자오산 정상부는 겨울 내내 흐린 날이 많고 강한 바람이 자주 분다. 맑은 날은 흔치 않다. 설사 파란 하늘이 펼쳐진다 해도 금방 구름에 숨기 일쑤다. 이 맑은 날을 만나야 수빙의 바다를 볼 수 있다. 3월부터는 맑은 날이 많아져 수빙을 볼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나 이번에는 비가 변수다. 봄비가 세차게 한 번 오면 수빙이 녹아내리면서 초라해진다.

공든 탑이 무너진 꼴이 된다. 따라서 여행자가 이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고 수빙을 제대로 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자오에서는 밤에도 관광객을 산 정상으로 안내한다. 보통 밤에는 대기가 안정된다. 하루 종일 눈이 퍼붓다가도 밤이면 별이 반짝이곤 한다. 이 때 자오산에 오르면 오색 불빛으로 물든 수빙을 볼 수 있다. 자연미는 조금 떨어지지만 조명으로 연출한 알록달록한 수빙은 색다른 풍경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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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스키장 정상까지 스키어와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로프웨이 아래로 수빙 숲이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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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오스키장이 있는 자조산 정상에서 스노보더가 아무도 가지 않은 눈부신 설사면을 내려오고 있다.

자오스키장은 수빙이 있어 한결 기대치가 높다. 로프웨이 정상에서 수빙 사이로 난 슬로프를 타고 내려오는 환상적인 스키잉을 할 수 있다. 물론, 날씨가 좋아야 가능하다. 바람이 심하게 불고, 구름이 자욱하면 하단부에서 타는 것만 못하다. 그렇다하더라도 스키어라면 당연히 수빙 사이로 질주하는 기대를 품는다. 날씨만 허락한다면 한 번은 타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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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승 체어리프트를 타고 가면서 감상하는 자오 스키장의 눈부신 상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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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부시게 파란 하늘이 드러난 자오스키장. 날만 맑으면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겨울 풍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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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조산 정상 동쪽 대사면에서 스키를 타는 스키어 뒤로 수빙 군락이 펼쳐졌다.

자오스키장은 니세코, 하쿠바와 함께 일본 3대 스키장으로 꼽힌다. 그만큼 규모가 크고, 스키어가 원하는 다양한 조건의 슬로프를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초중급자가 탈 수 있는 슬로프가 많다. 일본 스키를 처음 접하는 스키어도 편하게 스키잉을 할 수 있다.

다만 스키장이 워낙 크다보니 몇 가지 주의할 것들이 있다. 무엇보다 우선 스키를 타면서 동선을 잘 짜야 한다. 물론, 마음에 드는 구역이 있으면 그곳에서 하루 종일 놀아도 지루함은 없다. 같은 리프트를 이용해도 정설이 된 슬로프와 가장자리의 비압설 구간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실력만 되면 나무 사이로 스키를 타는 트리런도 즐길 수 있다. 이 때문에 초급자와 상급자가 같은 슬로프에서 함께 놀 수 있다. 초급 코스지만 어느 부분은 상급의 경사도로 구성되어 있는 슬로프도 많아 초보자의 도전욕을 자극한다. 그러나 일명 ‘도장 깨기’(스키장의 모든 슬로프를 타보는 것)를 하려면 작전을 잘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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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조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펼쳐진 대사면을 향해 질주하는 스노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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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밸리에서 황제 스키를 즐기고 있는 스키어. 자오에는 9개의 스키장이 모여 하나의 스키존을 형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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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백의 상고대가 피어난 나무 뒤편 슬로프에서 쉬고 있는 스키어들.

자오스키장은 베이스가 3개다. 왼쪽부터 우하노다이, 주오 로프웨이, 자오 로프웨이 순이다. 베이스에서 베이스까지는 도보로 10분 거리다. 스키를 들고 이동하기에 짧지 않은 거리다. 따라서 마지막에는 자신이 묵는 호텔 방면으로 내려와야 한다. 무심코 엉뚱한 방향으로 내려오면 최대 20분을 걸어가야 하는 불상사가 발생한다. 리프트를 갈아타면서 이동한다 해도 스키장 끝에서 끝까지는 최소 1시간 이상 걸린다. 따라서 어디서 시작해 어떻게 마칠 것인가를 정해 놓고 타는 것이 좋다.

자오스키장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는 것은 편한 반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가는 것은 조금 불편하다. 리프트가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다고는 해도 어느 곳은 리프트에서 내려 약간의 오르막을 거슬러 올라가야 다음 슬로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스키장이 넓기 때문에 항상 슬로프 지도를 휴대하고 다녀야 한다. 관광객이 많이 몰리는 주말에 로프웨이가 붐빌 때는 리프트를 갈아타면서 정상으로 이동하는 게 훨씬 빠르다.

지조산 정상을 올라가는 리프트는 없다. 스키장 중단에서 한 번 갈아타는 자오 로프웨이가 유일하다. 정상을 갈 계획이라면 이곳을 이용한다. 정상부는 항상 바람이 강하게 분다. 한치 앞도 안 보일 정도로 가스가 자욱할 때가 많다. 또 슬로프도 딱 하나뿐인데, 비좁으면서 초입은 가파르다. 만약, 바람이 강하게 불고 가스가 자욱하게 끼었다면 초보자들은 멘붕이 오기 십상이다. 따라서 맑은 날이 아니면 일부러 정상을 갈 필요가 없다. 하단에 안전하고 아늑한 슬로프가 지천이다. 40개나 되는 리프트는 이름 대신 번호를 외워두는 게 편리하다. 나이트 스키도 자오 로프웨이 하단부 슬로프에서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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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밸리에서 트리런을 즐기는 스노보더. 트리런은 파우더 스키 경험이 많은 스키어에 한해 헬멧 등 장비를 갖추고 안전한 곳에서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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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 밸리에서 바라본 자오스키장. 왼쪽 구름에 가려진 곳이 수빙 군락이 있는 정상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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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프트 아래에서 파우더 스노를 즐기는 스노보더.

일본 어디나 그렇지만 자오스키장의 매력 가운데 특히 온천을 빼놓을 수 없다. 사실은 먼저 온천이 있어 스키장이 생긴 것이다. 자오온천의 역사는 무려 19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화살을 맞아 부상당한 다가유란 무사가 이 온천에서 치유했다는, 어디서나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전설이 이 온천의 시초다. 그 후 그의 이름을 따 다가유온천이라 부르다 산 이름을 따서 자오로 바꿨다.

자오온천의 온천수 용출량은 어마어마하다. 1분 당 5700리터의 온천수가 나온다. 하루 8700톤 규모다. 보통 1일 온천수 용출량이 50톤 정도면 대형 호텔이 사용해도 충분한 규모다. 따라서 8700톤은 어마어마한 양이다. 계곡에도 뜨거운 온천수가 흘러간다. 겨울에 얼어붙은 도로를 녹이는 것도 아스팔트 속으로 흘려보내는 온천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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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키장 계곡 깊숙한 곳에 있는 자오온천 원탕. 뜨거운 온천수가 계곡을 이룰 정도로 콸콸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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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천의 거리에 있는 공중온천탕. 지금도 일반인들이 이용할 수 있다.

자오온천은 과거 온천마을의 정취를 느껴 볼 수 있는 온천의 거리가 남아 있다. 이 거리에는 크고 작은 료칸이 길을 따라 도열했다. 가장 안쪽에는 자오온천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오우미야 료칸이 있다. 이 료칸이 창업한 것은 1200년 전이다. 우리나라 연대기로 돌아보면 계백과 김유신이 황산벌에서 결투를 벌이던 삼국시대쯤이다. 오우미야 료칸의 시설은 겉에서 보면 별게 없다. 그러나 최근에 리모델링한 내부는 호화롭기 그지없다. 단, 가격이 비싸다. 온천의 거리에는 이밖에도 수백년이 넘는 공중온천탕 두 곳이 있다. 이곳은 지금도 영업을 한다. 또한, 온천수가 폭포를 이루고 떨어지는 풍경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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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0년 전부터 영업을 시작한 오우미야 료칸의 격조 있는 실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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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속에 파묻혀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바르토베르그의 노천탕.

자오온천의 온천수는 유황온천이다. 야마가타현에서는 유황 함량이 가장 높고, 강한 산성을 띄고 있다. 이 때문에 온천마을 전체에 계란 삶는 냄새가 자욱하다. 온천수가 강렬한 탓에 호텔에서 사용하는 가전제품 수명이 1년을 넘지 못한다고 한다. 또 수도꼭지 같은 금속을 사용하는 물건도 쉽게 부식된다. 노천온천 풍경 좋기로 소문난 바르토베르그(Wald Berg) 호텔의 실내온천탕에 있는 수도꼭지는 하나같이 시커멓다. 청소를 안 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온천수가 강한 산성이라 새것으로 바꿔도 몇 달이면 물이끼가 낀 것처럼 시커멓게 변한다. 반면, 온천수가 강렬하니 온천객의 만족도는 높다. 사방이 눈 천지인 뜨끈한 노천탕에 들어앉아 있으면 세월 가는 것도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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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토베르그 호텔의 객실. 미닫이창 너머로 가득 쌓여 있는 눈이 소담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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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토베르그 호텔의 조식 테이블에 놓인 행운의 편지. 손 글씨로 정갈하게 쓴 이 편지는 자리마다 내용이 다르다. 물론 7사람에게 다시 보내지 않아도 재앙은 없다.

취재협조=일본정부관광국(J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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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협조=일본정부관광국(JNTO)

●일본 스키 여행정보

자오스키장으로 가려면 센다이공항을 이용한다. 센다이공항까지는 아시아나항공이 매일 운항한다. 센다이공항에서 자오스키장까지는 한국 여행자를 위한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소요시간은 1시간 30분. 도쿄나 오사카 등 일본 현지에서 이동할 때는 야마가타 시내까지 간 후 버스를 이용해 자오스키장까지 가면 된다. 야마가타 기차역에서 자오스키장까지는 버스로 40분쯤 걸린다. 일본스키닷컴(www.ilbonski.com)은 바르토베르그 호텔에서 머무는 4박5일 초특가 상품을 내놨다. 다음달 5·6·13일 3번 출발하는 이 패키지 가격은 76만~79만9000원이다.

demory@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