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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악마의 고리가 마침내 끊어졌다. 너무나 질긴 고리였기에 지켜보던 많은 사람들의 속까지 후련해졌다면 지나친 과장일까.
체육계는 지난 24일 대한승마협회장 선거에서 창성그룹 배창환(68) 회장의 당선을 제일처럼 반겼다. 대한체육회의 회원종목단체 선거 결과에 체육계의 이목이 쏠렸던 이유는 박근혜 정권의 몰락이 승마협회와 무관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순실의 딸 정유라에게 온갖 특혜를 안겨주기 위해 정권 차원에서 체육단체를 사유화했던 게 바로 승마협회 사태의 본질이다. 촛불 시민혁명으로 박근혜 정권은 몰락했지만 승마협회는 여전히 적폐세력에 장악당해 체육계의 자존심은 크게 상했다.
배 회장의 당선 이전까지만 해도 승마협회는 거꾸로 가는 시계처럼 시대에 역행했다. 최순실 사태를 기획했던 박원오 전 전무이사 등 적폐세력들이 협회 행정을 여전히 좌지우지했고 회장 선거 때마다 이들이 내세운 꼭두각시가 회장 후보로 출마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됐다. 제 35대 대한승마협회장으로 선출된 배 신임 회장이 이 지긋지긋한 악마의 고리를 끊은 주인공으로 과연 그가 적폐청산이라는 체육계의 숙원을 풀어줄 수 있을지 기대가 자못 크다.
승마 국가대표 출신의 배 신임 회장은 승마협회 수장으로 재력과 정통성을 겸비한 인물이다. 그가 진흙탕 선거에 굳이 출마한 이유도 명쾌하다. “짓밟힌 승마인의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는 그의 짧은 출사표는 그야말로 울림이 컸다. 승마협회의 정상궤도 진입은 체육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체육에서부터 비롯됐지만 정작 체육계는 적폐청산에 두 손을 놓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적폐들의 농간에 놀아난 원죄가 있고 대한체육회는 태생적 한계 탓인지 개혁에는 굼떴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이제 승마협회가 칼을 쥐고 개혁의 신호탄을 쏘게 됐다. 체육계가 배 회장의 당선을 반기며 승마협회의 새로운 행보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배 신임 회장의 눈앞에 놓인 산적한 과제 중 우선적으로 처리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정부와 체육회가 제대로 하지 못한 적폐청산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어설픈 탕평책은 철학과 지향점을 흐트러뜨리는 적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체육계, 아니 대한민국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박원오 등 최순실 사태의 기획자들은 물론 이들에게 부역한 줏대없는 승마인들을 체육계에서 과감하게 퇴출하는 게 최우선 과제다. 적폐세력과 내통했던 사무국 직원도 규정에 따라 처리할 필요가 있다. 사무국이 중립을 지키지 않고 본분에서 벗어난 행동을 했다면 그 또한 서릿발 같은 처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난 집행부에서 억울한 누명을 쓰고 불이익을 받았던 사람들의 복권 또한 간과해서는 안될 문제다. 최순실 사태가 터진 뒤에도 승마협회는 적폐세력이 장악하고 있어 피해자들의 복권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맥락적 흐름을 추적하다보면 승마협회의 개혁은 대한민국 체육계 전체의 자존심이 걸려 있는 중차대한 문제다. 정권을 무너뜨리는 도화선이 됐던 체육단체의 개혁은 필연적이며 최순실 사태의 기획자와 부역자들을 적어도 체육계에서 쫓아내는 건 정의의 당당한 첫 걸음이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