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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프로축구연맹

[스포츠서울 김현기기자]“최대한 설명을 해보고 안 되면 어쩔 수 없죠.”

지방선거가 열려 구단주가 바뀐 한 시·도민구단의 고위 관계자와 통화했더니 이런 얘기를 했다. K리그 시·도민구단의 구단주는 시장이나 도지사가 맡는다. 해당 구단의 구단주가 바뀌어 걱정을 좀 했고 그 고위 관계자는 “내가 온 뒤 구단의 변화를 윗선에 최대한 설명해보고 노력하겠다. 그래도 안 되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을 전했다. 요즘 이런 심정으로 살아가는 시·도민구단 임직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올해는 유난히 시·도민구단 구단주 교체가 많았다. 지자체와 군·경이 구단을 함께 꾸려가는 상주와 아산까지 합치면 시·도민구단은 1~2부 총 22개 구단 중 59%에 달하는 13개나 된다. 그 중 10곳의 시장 혹은 도지사가 바뀌었다. 교체 사유도 갖가지다. 우선 경남, 인천, 안양은 기존 야당이 정권을 잡았다. 나머지 지자체는 여당이 또 이겼으나 다른 인물이 시장으로 온 경우다. 상주는 기존시장이 낙선했고, 부천과 광주에선 전 시장이 중앙 정치 도전 등의 이유로 불출마를 선언했다. 성남은 전 시장이 경기도지사가 됐다. 아산은 전 시장이 도지사 경선에 나섰다가 고배를 마신 경우다. 안산과 대전은 당은 그대로인데 각각 공천 불발, 재판 결과 시장직 상실로 새 사람이 왔다.

일각에선 시·도민구단을 ‘시청 구단’으로 부르기도 한다. 세금으로 구단 살림을 꾸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꼰 것이다.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다보니 지방 권력이 바뀔 때마다 시·도민구단엔 새로운 대표이사, 단장, 감독이 오는 게 트렌드가 됐다. 도지사나 시장 입장에서도 선거를 도운 핵심 체육 인사들을 배려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프로축구단 대표이사 임명이다. 1부리그 한 시민구단 직원은 “정권이 바뀌면 누가 사장으로 올지 윤곽이 그려진다. 사장 후보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것도 일이 됐다”고 했다. 2부리그 한 시민구단 직원은 “구단에서 정치색을 빼야한다고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 시장이 바뀌면 체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지난 23일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조기호 경남 대표이사의 사의를 반려하고 임기를 보장한 것은 시·도민구단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지난해 2부리그 조기 우승에 이어 올 시즌 1부리그 2위를 달리고 있는 경남의 상승세는 ‘찻잔 속의 태풍’이 아니다. 조 대표와 김종부 감독 및 코칭스태프, 프런트와 선수들, 팬이 하나로 뭉쳐 이뤄낸 위업이다. 3년 전 승부조작 및 심판매수 혐의로 프로축구에 큰 오점을 남겼던 경남은 이제 혁신의 중심에 서 있다. 김 지사도 지난 14일 창원축구센터를 찾아 경남의 인천전 3-0 대승을 지켜본 뒤 아내와 함께 자축하고 선수단과 기념촬영했다. 그리고 “경남FC가 1부리그 2위란 것을 아시나요?”라며 자랑했다. 그러나 지난 정권에서 부임했던 조 대표는 인천전 직후 사의를 표시했고 김 지사는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해 정당과 진영의 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유임이란 결단을 내렸다.

김 지사의 결정은 유능한 인물이라면 언제든지 시·도민구단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시그널을 보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몇 년 전만 해도 시·도민구단엔 시장이 바뀌거나 그의 마음이 바뀌면 고위 관계자는 물론이고 젖먹이 자녀들을 키우고 있는 말단 직원들까지 희생양이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세금으로 살아가는 시·도민구단의 현실 속에선 그게 당연한 것으로 간주됐다. 지금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구단주가 바뀐 다른 시·도민구단에서도 경남의 사례를 참고해 구단이 지방 권력의 임기인 4년을 주기로 쳇바퀴 돌아가듯 돌아가는 상황을 만들지 말고 미래의 초석을 닦았으면 한다. 내가 임명하지 않아도 능력 있는 대표이사는 계속 쓰고 내가 뽑았더라도 무능하고 부패한 인사라면 잘못을 인정하고 과감하게 바꿀 수 있어야 한다. 올 여름부터 올 겨울까지 시·도민구단에 긍정적인 씨앗이 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축구팀장 silva@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