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용
남자 검도대표팀 조진용이 16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제17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남자 단체전 조별리그 16조 2차전 스페인과 경기에서 루카스 피나와 부장 대결을 펼치고 있다. 인천 | 김용일기자

[인천=스포츠서울 김용일기자]“심지어 일본 기자도 내게 ‘부끄럽다’고 해요. 정말 이렇게 하면서까지 (일본이) 우승해야 합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야죠.”

16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막을 내린 제17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 마지막 날 ‘세계선수권의 꽃’으로 불리는 남자 단체전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한국의 수장 박경옥(53) 감독은 답답한 표정으로 호소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였다. 세계선수권은 검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대회지만 이전까지 국제 검도계에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종주국 일본의 텃세에 여러 나라가 판정 불이익에 시달렸다. 이번 대회에선 심판추천위원회를 신설해 경기장별로 해당 국가 심판과 직전 경기 심판을 제외한 모든 심판을 대상으로 추첨을 통해 배정하는 안이 채택됐다. 그러나 여전히 판정 시비는 끊이지 않았다. 남자 단체전 결승이 열린 이날 관중석에서 거센 야유가 터져나왔다. 한국은 선봉(1번) 박병훈과 중견(3번) 이강호가 상대 머리를 정확하게 가격하고도 점수로 인정받지 못했다. 한국이 1-2로 뒤진 채 마지막 주자로 나선 주장(5번) 조진용도 안도 쇼와 머리를 주고받으면서 1-1로 맞서다가 손목과 머리를 연달아 때렸지만 심판진 깃발은 올라가지 않았다. 심지어 안도가 막판 수세에 몰렸을 때 칼을 조진용의 어깨에 걸친 채 떨어지지 않고 한 바퀴를 도는 등 반칙 동작을 했지만 이 역시 심판진은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경기는 그대로 한국의 1점 차 패배였다.

일본을 향한 편파적인 판정은 이날 뿐만이 아니었다. 전날 여자 단체전 결승 한·일전에서도 한국의 선봉 정선아가 상대 머리를 정확하게 때렸지만 인정받지 못했다. 이밖에 남녀 개인전에서도 판정에 억울해한 다른 나라 선수 및 관계자가 기자가 앉은 미디어석으로 찾아와 영상을 보여주며 제보하기도 했다.

검도계의 편파판정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일본의 검도 실력은 세계 정상급임이 틀림이 없다. 그러나 최근 한국이 맹추격하면서 경기력에 별 차이가 없다. 미국이나 대만 등도 기술적으로 대등한 모습을 보이면서 일본을 추격 중이다. 그럼에도 1970년 대회 출범 이후 17차례 대회에서 일본이 다른 나라에 우승을 내준 건 지난 2006년 대만 대회 남자 단체전(한국 우승)이 유일하다. 나머지 남녀 개인전과 단체전은 모두 일본이 우승을 차지했다. 근래 들어 판정 논란이 거세지고 있어 우려가 크다. 국내 한 검도인은 “국제검도연맹(FIK)을 전일본검도연맹 산하단체라도 되는 것처럼 일본이 장악하고 있는데다 심판진도 일본인 또는 일본계가 많다.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면 (일본이) 우승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늘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이번 대회에도 50명의 심판 중 28명이 일본인 또는 일본계 심판이다. 이밖에 다른 심판도 대체로 일본 검도와 가깝기 때문에 심판 추첨제로 돌아섰다고 해도 효용성이 없다는 것이다.

FIK는 향후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 후보군 진입을 노리고 있다. 그러나 이런 판정 논란을 해결하지 못하면 정식 종목 진입은 커녕 종목 유지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세계선수권만 6회 연속으로 출전한 남자 대표팀 주장 이강호는 “늘 심판의 마음이 한쪽으로 쏠렸다는 느낌을 받고 들어간다. 일본과 만나면 (판정이 불리하다고 생각하니) 절대 안 맞아야 한다, 우리는 더 강하게 때려야 한다는 압박감이 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날 결승전이 끝난 뒤 다른 나라 선수들도 한국 더그아웃으로 다가와 위로해주는 웃지 못할 풍경이 펼쳐졌다.

검도는 ‘기(기합)-검(칼)-체(몸)’가 일치돼야 점수로 인정받는다. 일각에선 검도가 올림픽에 가려면 기검체 뿐 아니라 펜싱처럼 센서 부착 등 판정의 객관성을 담보할 장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 검도 관계자는 “FIK나 일부 국제 검도 권력자는 현상 유지를 더 원한다. 올림픽 종목이 되면 자신들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을 경계하므로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꼬집었다.

남녀 단체전 준우승(세계검도)
남녀 검도 국가대표 선수들이 16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막을 내린 제17회 세계검도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한 뒤 기념촬영하고 있다. 인천 | 김용일기자

한편 이번 대회 남자 개인전에서는 조진용과 박병훈이 각각 준우승, 3위를 차지했다. 남녀 단체전에서는 모두 준우승하며 검도 강국 입지를 굳혔다. 특히 전 세계 56개국 1200여 명 선수 및 임원이 참가하면서 인천 대회는 역대 최대 규모로 열렸다. 국내 검도인이 너도나도 자원봉사자로 참가했고 매일 8000여 구름 관중이 몰리는 등 검도 대중화에 이바지하며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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