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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한국 체육의 총체적 위기다. 마치 천지창조 이전의 혼돈의 시대를 보는 것 같아 답답하다. 한국 체육의 패러다임 시프트였던 체육단체 통합이 2년이 넘었건만 화학적 결합은 커녕 여전히 겉돌고 있는 건 애교에 가깝다. 국정감사에서 지적된 대한체육회의 인사난맥상에다 종목별 갈등과 분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어 도대체 어디서부터 수습해야할지 난감하기 그지없다.
특히 컬링의 ‘팀킴 사태’를 비롯해 국민들의 공분을 사게하는 체육회 회원종목단체의 갈등양상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해 특단의 대책이 절실한 상황이다. 체육단체의 갈등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라지만 최근 사태를 지켜보면 우려스럽기 짝이 없다. 체육 중심에서 밀려날 것 같았던 구 시대의 마피아들이 되살아나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현실은 반동(反動)의 역사를 목도하는 것 같아 걱정이 앞선다. 체육 마피아들이 펼치는 파벌싸움의 본질은 정의가 아니다. 옳고 그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속내를 뜯어보면 체육단체의 사유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정의라는 가면 아래 추악한 권력욕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게 그 싸움의 본질이다. 체육을 봉사가 아니라 생활로 여기는 그들의 시대착오적 의식과 태도가 체육회 출범 100주년을 눈앞에 둔 한국 체육의 서글픈 민낯이다.
체육단체 사유화를 획책하는 마피아들이 시계추를 되돌려 득세하는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기업이 떠나고 있는 작금의 체육환경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한국 체육발전에 크나큰 역할을 담당했던 기업들이 최순실의 K스포츠재단 여파로 손을 떼고 있는 가운데 체육 마피아들이 절묘하게 그 틈을 비집고 기생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섞인 분석이다. 여기에 적폐청산에 별 뜻이 없는 정부, 개혁보다 체육권력 유지에 눈이 먼 체육회가 이들을 적극적으로 견제하지 못하면서 체육계는 뒷걸음질치고 있다.
체육계가 시대정신과 유리된 채 파벌과 이권다툼에 휘말린 결정적인 이유는 한국 체육의 토양이 정의롭지 않기 때문이다. 목적보다는 수단, 그리고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한 한국 체육의 어두웠던 역사가 시대착오적인 체육 문화를 지속시킨 동력이 됐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힘들다. 한국 사회에서 체육인에 대한 촌철살인의 우스갯 소리는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체육인들은 불의는 잘 참지만 불이익은 결코 참지 못한다.”
뼈 있는 이 농담속에 작금의 체육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해법이 숨어 있다. 체육단체의 파벌갈등과 다툼을 해결할 수 있는 묘수는 체육계의 가장 약한 고리를 파고 들어가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불의를 잘 참는 사람들에게 정의를 강조하는 건 어리석은 일인지도 모른다. 이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경우 정의를 내세우기 보다는 불이익을 주는 게 훨씬 효과적인 솔루션일 수 있다. 한국 체육은 정의보다는 불이익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부끄럽게도 그건 명백한 진실이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