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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스포츠서울 칼럼니스트] 2000년 올스타 브레이크 후 LA 다저스 ‘코리안 특급’ 박찬호를 취재할 때였다. 스포츠 신문 특파원들끼리 원정길에 모여 승승장구하고 있었던 박찬호를 자연스럽게 화제에 올렸다.
이 때 주제가 ‘Dominate Pitcher(상대를 압도하는 투수)’ 여부였다. 특파원들은 당시 강속구의 박찬호가 우수한 투수임은 분명 하지만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그레그 매덕스처럼 상대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라고 결론냈다. 박찬호는 2000시즌 226이닝을 던져 18승10패에 방어율 3.27, 삼진 217개, 볼넷 124개를 기록했다. 메이저리그 입문 후 최고 시즌이었다.
류현진과 박찬호는 스타일이 다르다. 박찬호는 파워피처였고 류현진은 피네스(finesse) 피처에 가깝다. 삼진 갯수를 보면 파워피처와 피네스 피처의 중간급 정도로 볼 수도 있다. 류현진 등판 때 TV와 라디오 캐스터, 해설자들의 입에 자주 오르는 게 ‘Dominate’라는 단어다. 마운드에서 상대를 지배하고 압도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실제 기록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11경기에 등판해 내셔널리그 다승(8승), 방어율(1.48), 이닝당 안타와 볼넷 허용 WHIP(0.81), 삼진-볼넷 비율(13.80) 부문에서 1위를 고수하고 있다. 최근들어 중요하게 판단하는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WAR도 2.9로 NL 2위다. 1위는 콜로라도 로키스 선발 허먼 마케스(3.1)다.
‘도미네이트 투수’로 평가받으려면 승수는 물론이고 투구내용이 중요하다. 류현진은 11경기에 선발등판했다. 4월9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전에서 2회 물러난 뒤 10일자 부상자명단에 올라 다른 팀의 에이스급 선발에 비해 2경기 정도 뒤져 있다. 사타구니 부상 예방 차원에서 내려온 세인트루이스전을 제외하면 4월21일 밀워키 브루어스전 5.2이닝이 최소 이닝이다. 선발 11경기에서 2실점 이상을 한 게임이 없다. 5월8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전 완봉승을 포함해 무실점 선발 경기가 모두 4차례다. 모두 5월에 집중돼 있다. 삼진도 9이닝 기준 8.5개, 볼넷을 내준 경기는 5차례(1개씩)에 불과하다. 류현진 등판 때 영패를 당했던 뉴욕 메츠의 미키 캘러웨이 감독은 “왼손 매덕스”라며 그의 제구력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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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LB 중계 때 자주 언급되는 단어가 ‘도미네이트’와 ‘인티미데이트(Intimidate)’다. 명예의 전당 회원인 매덕스는 전성기 시절 도미네이트 피처였다. 좌완 랜디 존슨은 타자에게 겁을 주고 윽박지르는 스타일로 ‘인티미데이트 피처’라고 보면 된다. 좌타자들은 존슨에게 철저히 농락당했다. 전 필라델피아 필리스 좌타자 존 크룩은 1993년 올스타게임에서 존슨의 위협구 후 바깥쪽 멀리 빠지는 볼에 엉덩이를 뺀 채 헛스윙해 팬들에게 웃음을 안긴 적이 있다. 존슨은 좌타자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류현진은 현재 도미네이트 피처다. 이 페이스는 이곳 전문가들이 자주 언급하는 ‘사이영 어워드 타입’ 시즌이다. 지난달 31일 경기 후 메츠의 캘러웨이 감독은 “류현진의 피칭은 정리(sequence)를 할 수 없다”며 허를 찌르는 완급 조절과 볼배합에 혀를 내둘렀다. 11경기에서 8승을 거둔 원동력이다.
앞으로의 과제는 한 시즌 내내 마운드를 지배할 수 있느냐다. MLB 사상 한 시즌을 가장 도미네이트했던 투수는 1968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우완 봅 깁슨이었다. 명예의 전당 회원인 깁슨은 그 해 304이닝을 던져 22승9패 방어율 1.12를 기록했다. 완봉승 13차례, 삼진 368개로 사이영상과 MVP를 수상했다. 깁슨의 도미네이트한 시즌으로 MLB는 1969년부터 마운드의 높이를 낮췄다.
류현진은 그동안 해외파들이 해보지 못했고 가보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올스타게임의 선발투수로 거론된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