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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IOC(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은 개인을 떠나 국가의 영예다. 오는 26일(한국시간) 스위스 로잔에서 열리는 제134차 IOC 총회를 마치면 이기흥(64) 대한체육회장은 한국인으로 역대 11번째 IOC 위원에 오르게 된다. 예비 IOC 위원의 총회 통과는 요식행위에 불과해 이 회장의 IOC 위원 입성은 사실상 틀어질 일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내로라는 국내 재벌들이 너나 할 것없이 뛰어든 IOC 위원 도전이었지만 결국 이 회장이 바늘구멍을 통과한 낙타가 된 셈이다.

IOC 위원에 오른 건 개인과 국가에 모두 큰 영광이겠지만 정작 중요한 건 지금부터다. IOC 위원이라는 화려한 훈장에 취할 만큼 국내 체육계가 녹록치 않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체육은 혼돈, 그 자체다. 화학적 결합이 아닌 물리적 결합에 머문 체육단체 통합의 후유증은 차치하고 일부 정치권과 정부가 쏟아내는 무책임한 체육정책은 그 의도를 의심받게 할 만큼 균형감각을 상실했다는 게 중론이다. 무슨 의도인지 현장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고, 그렇다고 탁월한 전문성도 없으면서 편향된 사고와 정향된 방식으로 몰아붙이는 일련의 정책은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체육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민·관합동기구인 스포츠혁신위원회(위원장 문경란)의 잇따른 권고안은 이미 생명력을 상실했다. 의도한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숨겨뒀던 논리적 허점과 비약이 만천하에 드러났고 현장을 무시한 추상적 담론의 한계도 노출됐기 때문이다. 엘리트체육을 적대시한 이들의 태도는 기존 체육계로부터 강한 저항을 불러왔고 모래알 같았던 체육인들을 조직적으로 뭉치게 하는 촉매제가 되기도 했다.

현장을 무시한, 아니 의도적으로 배제한 혁신위의 강한 드라이브는 통합되어야 할 체육계를 또 다시 엘리트체육 VS 반엘리트체육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로 갈라놓고 있는 모양새다. 현장의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대화와 타협으로 충분히 메울 수도 있었던 문제가 대립구도로 확전된 데는 체육을 권력투쟁의 연장선으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의 책임도 크지만 한국 체육의 수장인 이 회장의 실정(失政) 탓도 크다. 따라서 이 회장이 IOC 위원이라는 화려한 감투를 쓰고 난 뒤 어떤 리더십을 보여주느냐에 따라 한국 체육의 미래지형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이 회장이 IOC 위원을 확정한 뒤 오는 28일 귀국하게 되면 체육계는 한바탕 회오리바람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몸을 사렸던 이 회장이 국제 스포츠무대에서 한껏 높아진 위상을 앞세워 목소리를 낼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엘리트체육의 가치를 폄훼하고 개혁이라는 미명하에 대한체육회의 사업과 권한을 빼앗으려드는 세력과 한바탕 힘겨루기가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이 회장이 체육계, 더 나아가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기 위해선 선결과제가 있다. 바로 안으로부터의 강한 개혁이다. 체육을 권력투쟁의 연장선으로 여기는 이들이 체육을 농단할 수 있는 빌미를 더이상 제공해서는 안된다는 게 체육계 안팎의 한결같은 조언이다. 따지고 보면 이 회장이 대한체육회 수장에 오른 뒤 선거공신들을 무리하게 전면에 배치하는 체육회 사유화를 획책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무리한 체육개혁도 벌어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

뼈를 깎는 자성의 노력으로 체육회 스스로가 개혁의 주체로 거듭나지 못한다면 한국 체육은 단 한발도 나아갈 수 없다. 이게 바로 체육을 바라보는 시대정신이요 시민사회의 눈높이다. 정치권과 정부 주도의 체육개혁은 후유증이 크며 근본적인 개혁과도 거리가 멀다. 체육회가 스스로 개혁하지 못하면 언젠가는 또다시 개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하고 이 회장은 내부에서 시작되는 개혁의 지휘자로 변신해야 한다.

산적한 체육계의 현안에서도 이 회장이 견지해야할 방향성이 있다. 바로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자세다. 자신의 이해관계를 관철시키기보다는 IOC 위원의 품격에 걸맞게 자신을 내던질 수 있는 ‘통 큰 자세’가 필요하다. 아시다시피 이 회장은 NOC 위원장의 자격으로 IOC 위원에 뽑힌 케이스다. 따라서 오는 2020년 말로 예정된 체육회장 선거에서 떨어지면 IOC 위원 활동도 2년 남짓에 그칠 수 있다. 재선을 위해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겠지만 큰 뜻을 좇는 대인은 남다른 길을 걷는 게 맞다. 절박한 상황에서도 자신보다 체육계 전체를 위한 마음 씀씀이와 행동을 보여준다면 표는 자연스럽게 이 회장에게 몰리게 돼 있다. 그러나 자칫 재선에 실패해 IOC 위원에서 낙마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쩨쩨하게 군다면 결과는 뻔하다. 쌓여있는 한국 체육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자신의 이익을 결부시키기 보다는 전체의 이익을 염두에 두고 처리한다면 그것이야말로 IOC 위원의 품격에 걸맞는 체육회장의 당당한 자세가 아닐까. IOC 위원보다 더 무거운 대한체육회장의 무게, 금의환향하는 이 회장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부국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