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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마사회의 말 수의사들이 경주마를 응급치료하고 있다.  제공 | 한국마사회

[스포츠서울 박현진기자] 요즘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이 연일 화제다. 의사들의 전문적이고 냉철한 기존 이미지에서 탈피해 우정과 사람 냄새나는 이야기를 밀도있게 담았다는 반응이다. 드라마의 인기 고공행진과 함께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의사들의 이야기처럼 말들에게도 그들과 소통하고 치유하는 ‘말 수의사’가 있다. 말 수의사는 일반적으로 말의 질병과 상해를 예방, 진단, 치료하며 이를 위한 연구와 자문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직종이다. 특히 한국마사회에 소속된 수의사들은 경마운영은 물론 방역, 검역 까지 다양한 범위를 담당하며 경주 전·후 마필 건강을 확인하고 경주 중 발생하는 사고에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항시 대기하고 있다. 또한 금지약물 검사도 하는데 이를 위한 시료 채취, 보안도 말 수의사들이 담당한다. 업무 전반적인 내용은 의사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아프고 상처받은 말들과 교감하며 채워지는 그들의 일상은 조금 특별하다. 말 수의사들이 생생하게 전하는 ‘슬기로운 말 수의사 생활’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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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마사회의 말 수의사들이 치료가 끝난 경주마를 돌려보내며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제공 | 한국마사회
◇ 빈번한 ‘산통’ …말 수의사에겐 단순치 않아

말 수의사들에게도 ‘산통(疝痛)’은 익숙하다. 산통은 특정한 질병명이 아니라 복강 내 장기에 이상이 생겨 배가 아픈 증상을 통칭하는 말로 그 원인이 다양할 뿐만 아니라 갑자기 발현하기도 한다. 심한 경우에는 사망에 이르기도 해 수의사들이 가장 신경쓰는 말 질환중 하나다.

말은 소화기관이 무척 길고 용적도 상당하다. 1.5m 길이의 식도를 지나 15ℓ 크기의 위가 연결돼 있으며 이어서 길이 15~22m, 용적 55~70ℓ의 소장에 다다른다. 7m 길이의 대장은 140~150ℓ의 큰 용적을 차지한다. 이렇게 거대한 말의 장은 다른 동물과 달리 복강 내에 견고하게 붙어있지 않고 매달려 둥둥 떠다니는데 이로 인해 장의 위치가 변하고 꼬여서 막히기 쉽다. 말은 배가 아파도 이를 호소할 수 없기 때문에 말 수의사는 배앓이를 하는 말을 만나면 먼저 청진기를 활용해 문진을 하고 말의 행동을 관찰한다. 산통이 있는 말은 대부분 통증 반응을 발현하는데 발 긁기, 심박증가, 헐떡임, 눕기, 구르기 등이 대표적인 통증반응이다. 이마저도 경중의 정도가 다양하며 때론 통증을 전혀 보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산통을 유발하는 원인은 장폐색(막힘), 변위(위치변화), 장중첩, 가스축적, 변비, 식체, 장경련, 장염, 장 내 모래축적, 위궤양, 독소감염 등 매우 다양하다. 말 수의사는 말의 신체 상태 확인을 위해 체온 측정, 청진, 호흡수 측정 등 기본적인 신체검사를 하고 혈액검사를 통해 각종 수치를 확인한다. 직장에 손을 넣어 장을 만져보기도 하고 복부 초음파를 통해 장의 위치와 상태를 확인하는 검사도 수행한다. 원인을 진단하고 나면 바로 치료를 진행한다. 크게 약물을 이용한 내과적 처치와 수술을 통한 외과적 처치로 나뉜다. 내과적 처치는 소염진통제, 진정제, 수액, 영양제 등 증상에 적합한 약물과 식이조절 등을 통해 치료하는 방법으로 많은 경우 내과처치만으로도 증상이 호전된다. 내과처치로 호전되지 않거나 애초에 내과치료가 불가능한 케이스의 경우 개복술을 실시하기도 한다. 전신마취 후 배를 열어 장기를 절개하거나 장문합(장을 잘라 서로 이어붙임), 위치교정 등 각종 기법으로 수술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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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마사회의 말 수의사들이 경주마를 응급치료하고 있다.  제공 | 한국마사회
◇ 새벽 해가 뜰 때까지 진행되는 수술도

500㎏에 이르는 말을 수술하는 과정은 육체적 노동이 수반된다. 수술복, 마스크, 장갑, 모자로 온몸을 덮은 수의사들은 150ℓ에 육박하는 대장을 온몸으로 껴안는 듯한 모습으로 장을 꺼내고 20m에 달하는 소장을 일일이 만져가며 탐색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산통의 원인을 찾고 나면 의학 드라마에서 흔히 보는 가위, 칼, 겸자 등과 같은 기구를 이용해 수술을 하고 굵은 실과 바늘로 복부를 봉합한다. 말이 전신마취에서 깨어 회복하고 나면 수술은 종료되는데 여기까지 최소 2시간에서 길면 6~7시간이 걸린다.

산통은 언제 어디서나 응급 상황으로 발생할 수 있다. 수술이 지체된다면 수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때문에 산통 응급진료와 수술을 대기하는 것은 말 수의사들의 숙명이다. 때로 오후 9시가 넘은 늦은 시간에 응급진료를 하고 수술까지 하는 경우가 있는데 수술 후 말이 회복할 때까지 기다리면 새벽 3시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를 볼 때도 있다. 결코 사명감 없이는 하기 어렵다. 수의사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에는 따뜻하면서도 투철한 직업 정신이 담겨있다. 한국마사회 정재민 수의사는 “수술이 잘 돼 건강한 모습으로 당장 경주로를 누빌 것 같이 활기차게 말이 퇴원할 때의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힘들고 고되지만 말 수의사가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이라고 말했다.

jin@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