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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위기가 기회라는 말을 실감하는 시대다.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겪으면서 세계가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을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지구촌 모두가 한국의 방역 시스템에 놀라움을 나타내며 너나 할 것 없이 호평을 쏟아내고 있는 것은 물론 한국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선두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찬사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국이 코로나19로 맞이한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고 있는 상황은 어깨가 절로 으쓱거리고도 남을 일대 사건이다.

기회는 결코 우연이라는 옷을 갈아입고 찾아오지는 않는다. 한국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선두주자로 떠오른 것도 그렇다. 일찌감치 시대를 간파하고 이에 걸맞는 인프라를 선제적으로 구축했기에 가능했다. 시대를 읽고 ICT(정보통신기술)분야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어 초연결사회에 진입한 것은 물론 이를 바탕으로 한 비대면접촉 기술을 구현할 수 있는 사실상 지구촌 유일의 국가로 변신한 게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킨 밑바탕이 됐다. 한국이 코로나 19의 팬데믹을 통해 국가 위상을 끌어올리고 있는 건 어찌보면 자연스런 일인지도 모른다. 일단 기선을 잡는 데는 성공했다.

K-방역이 세계의 모범이 된 데 이어 또 한 분야인 K-스포츠가 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것도 더더욱 반가운 일이다. 메이저리그 외엔 안중에도 없었던 콧대높은 미국이 우리의 KBO리그를, 그리고 축구에 죽고 사는 유럽팬이 변방의 K리그를 안방에서 지켜보게 된 것은 정말 가슴 뿌듯한 일이다.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 주민들이 한국의 NC 다이노스 팬이 되는 거짓말 같은 일도 생기고, K리그 해외 중계권이 무려 36개국에나 팔린 기적같은 일도 벌어졌다. 플랫폼 비지니스인 스포츠산업에서 한국의 프로 스포츠리그가 글로벌화됐다는 건 큰 의미를 지닌다. 글로벌화된 스포츠산업에서 시장의 확장성과 더불어 콘텐츠의 상품성마저 획득했다는 사실은 K스포츠의 질적 도약을 입증하고도 남을 만한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K-방역과 K-스포츠가 세계의 이목을 끌며 상종가를 치게 된 배경은 무엇 때문일까.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고 두 분야를 꼼꼼히 따져보면 한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전문가 집단에 대한 철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한 시스템의 가동,바로 그것이다. 물론 코로나19는 국가적 위기 상황이라는 평범하지 않는 상황이 개입돼 있긴 하지만 어찌됐건 정치권력 등 외부의 입김이 철저히 배제된 채 전문가 중심으로 대책이 논의되고 실행됐다. 전문가 집단이 똘똘 뭉쳐 기획(plan)-실행(do)-평가(see)라는 엄정한 프로세서를 거쳐 위기상황을 매뉴얼에 따라 대처했다. 정치권력 등 외부의 입김은 물론 편견과 독선 그리고 과학적 사고와 논리에 맞지 않는 판단 또한 철저히 배제됐음은 물론이다.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인 어설픈 3류 정치권력의 간섭과 침범을 원천척으로 차단한 게 코로나 사태를 슬기롭게 대처해 나가고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는 평가는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상황에 대한 위기관리 능력은 결국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는 게 고스란히 증명됐기 때문이다. 한국은 그동안 각 분야에서 전문성을 존중하기 보다는 정치권력 등 비전문가들이 선무당처럼 나서 판을 어지럽혔다.

K-방역은 혹독한 실패의 경험을 이겨내고 꽃을 피운 그런 분야다. 전문가들은 지난 메르스 사태에서 뼈저리게 경험한 실패를 바탕으로 출발했다. 이들은 전문성과 창조적 상상력을 발휘해 한국의 토양에 맞는 매뉴얼을 만드는 체계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그 결과가 이번 사태를 통해 나타났다. 정치권력도 한발을 비껴서 전문가 집단을 존중하고 실패속에서 다져놓은 이들의 매뉴얼을 철저히 믿고 따랐다.

K-스포츠,엄밀하게 말해 한국의 프로 스포츠는 대표적인 전문가 집단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0년대 초반부터 태동한 한국의 프로 스포츠는 가장 먼저 글로벌화를 추진한 분야다. 한국의 프로 스포츠가 시장과 자본의 한계로 산업화에선 다소 미흡했지만 다양한 접근과 실험을 통해 공감을 이끌어내는 국민 친화적 문화콘텐츠로 급성장한 건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위기관리 능력은 뛰어나다. 국민과 함께 호흡하고 성장해온 한국의 프로 스포츠는 공감능력이 탁월한데다 프로구단이 대기업의 홍보역할을 수행해온 터라 위기관리 능력에선 뛰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번 코로나사태에서도 K-스포츠는 과감한 결단과 선제적 조치로 그 어느 분야보다 앞선 시스템과 위기관리 능력을 뽐냈다. 이 모두가 전문가 집단의 축적된 경험과 탁월한 전문성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한 조치였다.

K-방역과 K-스포츠는 한국의 가능성을 확인한 계기가 됐고,이 두 분야의 성공은 향후 한국이 가야할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어 자못 의미가 깊다. 얄팍한 정치논리와 섣부른 정치권력에 휘둘리는 국가에서는 위기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생명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권력이 아니라 전문가 집단이 구축해 놓은 시스템에 의해 돌아가는 국가,이게 바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대한민국이 가야할 길이 아닐까.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