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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고진현기자]한국의 체육정책에서 간과해서는 안될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인프라의 문제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의 체육 인프라는 아직도 취약하며 삶의 질이 향상되고 체육의 다양성과 욕구가 커질수록 이에 대한 문제 해결이 정책 성공의 핵심열쇠가 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한국 체육이 엘리트를 지향하는 학교체육이라는 독특한 모델을 선택한 것도 따지고 보면 체육 인프라와 무관하지 않다. 체육활동에서 필수적인 넓은 운동장과 실내 체육관을 보유한 곳이 당시로선 학교밖에 없었으니까 그렇다. 체육 인프라가 이렇게도 중요하지만 많은 돈이 들어서인지 그동안 이 부문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빈약했던 것도 사실이다. 100년 역사의 한국 체육이 새로운 100년의 첫 발을 내디딘 마당에 체육 인프라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바람직한 대안 제시는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한국의 체육 인프라는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공급이 수요에 미치지 못해 인프라 사용을 놓고 권력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게 본질적인 문제다. 권력의 크기에 따라 인프라를 선점하고 다른 수요의 참여를 억제하는 현상이 빈번하다. 인프라 사용의 공정성을 놓고 늘 갈등과 반복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국 체육 인프라의 도드라진 특징 중 하나인 비대칭성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이는 살아 있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은 탁상행정의 산물이라는 지적이다.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선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지만 농촌에선 오히려 인프라가 남아도는 일이 빈번하다. 격에 맞지 않고 별 쓸모도 없는 국제규모의 시설도 부지기수다. 체육 인프라가 현장성에 무게중심을 둔 전문가의 분석과 진단에 의존하지 않고 정치적 고려와 선택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면서 생긴 기현상이다. 체육 인프라의 권력화와 도·농간의 비대칭성은 결국 행정력의 빈곤에서 야기된 문제점인 셈이다.

인프라 사용의 공정성은 견제와 감시의 시스템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다. 광역 체육단체는 그래도 주변의 눈을 의식해서인지 겉으로는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척이라도 하지만 풀뿌리인 기초 체육단체로 넘어가면 상황은 달라진다. 대놓고 체육을 정치로 접근하는 낡은 습관이 그대로 작동하면서 먹음직스런 이권인 인프라를 자신들이 위탁 관리하는 꼼수를 부린다. 체육의 정치화는 기초체육단체의 인프라 이권사업에서 비롯된다는 게 현장의 성난 목소리다.

한국 체육은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았다. 학교체육에서 스포츠클럽으로 지형 변화를 꾀하고 있는 상황에서 체육 인프라의 공정성 확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프라를 매개로 권력화되는 낡은 체육 생태계를 바꾸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패러다임 전환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스포츠클럽이 일정한 자격과 요건을 갖추기만 하면 누구나가 공평하게 인프라를 사용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갖추는 게 새로운 체육 생태계에 힘찬 뿌리를 내리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권력을 통한 인프라의 사유화는 체육개혁과도 맞닿아 있다. 대부분의 체육 인프라가 지방자치단체 혹은 학교에 소속돼 있는 지금의 상황을 고려하면 이들과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집단이 새로운 주체인 스포츠클럽의 진입을 교묘하게 방해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일은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는 게 현장의 증언이다. 인프라의 폐쇄성은 부정 부패의 온상이 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곤란하다.

도·농간의 체육인프라 비대칭성은 체육을 정치로 접근하고 이해한 결과다. 체육을 체육으로 접근했다면 도·농간의 체육인프라 비대칭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스포츠클럽을 정책적 지향점으로 삼은 한국은 두 갈래의 갈림길에서 하나를 선택했다. 지역사회를 기반으로 한 스포츠클럽 모델보다 학교를 거점으로 삼는 스포츠클럽 모델이 유용하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판단을 내린 이유도 결국 인프라 문제에서 기인했다. 한국에선 학교 운동장이라는 인프라를 제외하면 사실상 체육공간을 확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교육자의 의식전환도 이 참에 필요하다. 체육활동 중 사고가 나면 어쩔까 하는 공포감과 그에 따른 책임감,그리고 체육이 문제가 많다는 선입견에서 하루빨리 벗어나자. 지역민과 함께 하면서 샘솟는 스포츠의 소통 및 공감능력과 연대의식 등에 후한 점수를 주고 체육시설을 과감하게 개방하는 진취적인 자세를 보여줬으면 좋겠다.

한국 체육은 그동안 인프라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생산적인 담론에 담아내지 못했다. 흔히 체육 인프라하면 메가 이벤트에서나 고려해봄 직한 사안으로 넘겼지만 이제는 다르다. 체육이 일상적 삶으로 기능하는 공간으로서의 인프라는 깊이있는 연구와 접근이 필요하다. 제대로 된 진단과 처방은 훼손된 정보없이 실상을 파악할 때 비로소 나올 수 있다. 인프라 사용의 공정성 확보와 도·농간 인프라의 비대칭성 극복은 한국 체육의 성패를 결정짓는 핵심 열쇠로 부족함이 없다.

편집국장 jhkoh@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