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상열의 부시리그

[LA=스포츠서울 문상열 전문기자] 지난 시즌 88승5무1패 승률 0.615를 기록했던 SK의 2020시즌 추락은 전혀 예상밖이다. 에이스 김광현(32·세인트루이스)이 팀을 떠났다고 이렇게 몰락했다면 그건 프로 팀이 아니다. 동네야구다.

기자는 올 2월과 3월 플로리다 베로비치, 애리조나 투산에서 SK 염경엽 감독을 만났다. 플로리다 베로비치에서 지난 시즌 막판 선두를 내준 게 KBO 제도의 미비 때문이라며 목청을 높였던 모습이 선하다. 자신감도 여전했다. 염 감독은 태평양 돌핀스 시절부터 취재원이다. 넥센(현 키움) 지휘봉을 잡은 뒤에도 애리조나에서 해마다 만났다. 개인적으로는 감독보다 프런트맨이 적격이라는 생각을 자주했다. 야구단의 청사진을 그리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현역 생활은 눈에 띄지 않았으나 프런트맨으로, 감독으로 만났을 때 늘 자신만만이었다. 쇼핑을 좋아하고 패션에 유난히 신경쓰는 모습도 독특했다. 태평양 시절부터 유명했다. 지난 3월에도 여러 얘기를 나누면서 자신은 인생의 좌절을 겪어보지 않았다고 했다. 얼핏 감독으로 비지니스맨으로 왜 실패하는지 모르겠다는 투였다.

가정 환경도 넉넉했고 야구 선수로서 기량이나 체격조건은 뛰어나지 않았음에도 광주일고-고려대 등 명문교를 나온 배경이 자신감의 발로일 터였다. 그러나 야구인 염경엽은 2020년 난생 처음 겪어보는 경험을 하고 있다. 감독으로 성적부진의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하고 덕아웃에서 쓰러졌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미 부정적인 ‘낙인’이다. 하루하루 승부 세계를 걷는 감독의 멘탈리티로서 턱없이 부족하다.

야구뿐 아니라 스포츠는 흐름이다. SK의 추락은 지난해 9월부터다. 월간 성적에서 처음 승률 5할 이하(8승10패)를 기록했다. 정규시즌 1위 자리를 허무하게 두산에게 빼앗긴 후유증은 플레이오프에서 나타났다. 키움에게 3패로 시즌을 마감했다. 디펜딩 챔피언의 위용은 없었다. 정규시즌 1위를 하지 않고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거둔 미국인 트레이 힐만 감독과 대조를 이뤘다. 포스트시즌은 ‘감독의 게임’이다. 9월의 추락은 해가 바뀌어 2020시즌에도 이어지고 있다. 해가 바뀌면 자연스럽게 2019시즌의 문제가 해결될 것으로 믿었겠지만 프로 세계는 냉정했다. 포지션별 취약점 보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나락으로 떨어졌다. 특정 선수가 팀을 떠나서 드러난 추락이 아니다. 투수력, 공격력, 수비력 모두 전년도와 견줘 떨어졌다. 기록은 거짓말하지 않는다.

한 시즌만에 SK처럼 추락하기란 쉽지 않다. SK는 6일 현재 32승 1무 69패 승률 0.317다. 염 감독이 그라운드에 복귀했어도 대행 체제나 큰 차이는 없다. 현재 페이스라면 승률 0.350대 복귀도 의문이다. KBO 리그 38년 역사상 전년도 승률 6할대 팀이 이듬해 3할대로 추락한 경우는 딱 한 팀있었다. 1996년 OB 베어스다. 1995년 74승 5무 47패 승률 0.607에서 이듬해 1996년 47승 6무 73패 승률 0.397로 떨어졌다. SK는 144경기의 프로젝트 넘버로 계산하면 48승 정도가 된다. 승수로 치면 전년도 대비 40승이 빠진다. 승수 면에서는 역대 최대 낙폭이 된다.

염 감독을 기자들은 삼국지의 제갈량에 비유해 ‘염갈량’이라고 불렀다. 두뇌 회전이 빠르다고 붙인 애칭이다. 감독을 ‘야구의 신’이니, ‘야구 대통령’이니 하는 칭송은 하지 않기 바란다. 야구는 선수의 게임이다. 포스트시즌이 감독의 게임이다. 전임 감독이 한국시리즈 정상을 안겨주고 떠났음에도 포스트시즌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이어진 정규시즌은 곤두박질이다. 키움에서 성공이 SK에서는 왜 이어지 않을까. 키움은 부담없는 팀이었다. 감독 염경엽은 과포장된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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