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국 전북 현대 제공
이동국 /전북 현대 제공

[스포츠서울 박병헌전문기자] 프로축구 K리그1 전북 현대의 특급공격수 이동국이 청춘을 바치고 인생을 걸었던 녹색 그라운드를 떠난다. 오는 11월1일 대구 FC와의 2020 시즌 최종전이 그의 은퇴 경기다. 28일에는 정들었던 전주월드컵 경기장에서 은퇴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가 한국 축구에 큰 족적을 남긴 만큼 많은 미디어들이 자리를 함께 했다.

포항 스틸러스에 입단할 때 대선배이던 홍명보(현재 대한축구협회 전무)가 입었던 20번을 달고 지금까지 뛰었던 이동국이 23년간의 선수생활을 접은 것은 남들과 달리 부상 때문이 아니었다. “몸이 아픈 것은 참을 수 있는데 정신이 나약해지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는게 은퇴의 변이었다. 최소 1~2년을 더 뛸 수 있었지만 아름답게 떠나겠다는게 그의 생각이었다.

1998년 고향의 포철공고를 졸업한 뒤 고졸신인으로 19살때 포항의 검빨(검은색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프로에 데뷔한 이동국은 인상적인 경기력을 떨쳐 그해 프랑스 월드컵 대표팀의 막내로 깜짝 승선했다. 그는 ‘라이언 킹’으로 불리웠다. 당시 축구를 취재하던 현장 기자였던 기자는 이동국이 23년동안 이렇게 롱런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게으른 천재’라는 이미지도 없지 않았다. 더구나 K리그 통산 547경기에 출전해 228골 77도움으로 역대 최다골을 기록한 ‘살아있는 전설’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 못했다.

비록 쓰라린 경험이었지만 잉글랜드 프로축구도, 독일 프로축구도 맛봤다. 광주 상무, 성남 일화를 거쳐 반신반의하며 2009년 전북 에 입단한 뒤 ‘영원한 스승’인 최강희 감독(현재 상하이 선화)을 만나 만개할 수 있었다. 이동국은 꽃길만을 걸어 오지 않았고, 안티팬도 적지 않다. K리그에서는 불멸의 기록을 세웠지만 월드컵 무대에서는 작아졌다. 2002년 한일월드컵때에는 대표팀에서 탈락했고, 2006년 독일월드컵을 눈앞에 두고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입고 또 눈물을 흘려야 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도 대회 전 입은 부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꿈의 무대인 월드컵과의 악연으로 상처받았던 방황과 고난의 무게를 거뜬히 극복해냈기에 이동국은 롱런하며 대선수로 성장했으리라 믿는다. 저절로 피는 들꽃은 없지 않은가. 그가 은퇴후에 어떤 길을 걸을지는 미지수다. 지도자의 길을 걷든 아니든간에 성공적인 축구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bhpark@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