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스포츠서울 조현정기자]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16개월 입양아 정인이 사망사건을 방송한 뒤
공분을 사고 있다.
방송 직후 인터넷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에 '정인아 미안해' '16개월 정인이'와 함께 '양천경찰서'가 오르내리고 있다. 많은 네티즌은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받고도 세 차례나 부실 처리한 양천경찰서 홈페이지에 비난 여론을 퍼붓고 있다.
3일 서울양천경찰서 '칭찬합시다' 게시판에는 비난 게시물이 쏟아졌다. "정인이 사건 담당자들 처벌하라" "정인이 담당 경찰 징계를 요구한다"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방관한 경찰도 공범이다" 등분노한 네티즌들의 게시물이 도배하다시피 했다.
2일 방송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제작진이 단독 입수한 CCTV 영상, 부검감정서 및 사망 당일 진료기록을 바탕으로 16개월 입양아 정인이가 왜 죽음에 이르렀는지 되짚었다.
정인이는 2020년 10월 13일 세 번의 심정지 끝에 응급실에서 숨을 거뒀다. 위독한 환자들을 수없이 접한 응급실 의료진이 보기에도 당시 아이의 상태는 처참해 또래에 비해 눈에 띄게 왜소한 데다 온몸이 멍투성이였으며 찢어진 장기에서 발생한 출혈로 복부 전체가 피로 가득 차 있었다. 생후 7개월 무렵 양부모에게 입양된 정인이는 입양 271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의료진은 아이 몸에 드러난 손상의 흔적들을 단순 사고가 아닌 아동학대라고 판단해 현장에 있던 양모 장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정인이를 숨지게 한 혐의로 장씨는 구속기소된 상태다. 부검감정서에 따르면, 사인은 외력에 의한 복부 손상. 강한 외력으로 인해 췌장도 절단된 상태였다.
양모 장씨는 단순한 사고였을 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장씨는 아이가 말을 듣지 않아 홧김에 흔들다 자신의 가슴 수술로 인한 통증 때문에 정인이를 떨어뜨렸다고 말했다.
검찰은 장씨를 살인이 아닌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정인이의 죽음이 고의가 아니라 실수라는 게 장씨의 주장이다. 정인이 양모의 죄목을 결정하는 재판은 오는 13일 시작한다.
정인이가 응급실에서 숨을 거두기까지 세 차례의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첫 신고 때부터 증거가 없다며 사건을 종결시켰다. 어린이집 교사들은 여러 상처에 아동학대 신고를 했고, 아동보호전문기관과 경찰이 어린이집으로 출동해 조사했다. 그러나 정인이의 양부모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이에 대해 어린이집 교사는 "경찰이 어린이집에 출동해 아동 학대 조사를 시작했지만 경찰관은 '뼈가 부러지거나 어디가 찢어지지 않는 이상 아동학대 사건으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며 "경찰서에 와달라고 해서 갔는데 정인이 엄마와 아빠랑 입양 관련 일을 했다더라. 경찰이 하라는 대로 아동보호전문기관이 하라는 대로 다 해줬다더라"고 말했다.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좋지 않을 일을 할 리 없다는 편견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이야기였다.
사진| SBS
한 달 뒤 정인이가 차에 방치돼있는 것을 발견한 한 시민이 두 번째 학대 의심 신고를 했지만 이번에도 실제적인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세 번째 학대 의심 신고는 소아과 전문의가 했지만 당시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소아과 전문의는 "경찰분들에게 강력하게 말했다"며 "부모와 분리가 돼야 한다고 했는데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정인이를 학대한 양엄마는 단골 병원으로 다시 갔고 그곳에서 구내염 진단을 받았다.
정인이를 학대한 범인으로 양엄마가 주로 의심받았지만 양아빠가 해명해 의심을 피했다. 양아빠는 정인이의 몸에 몽고점이 있고 아토피가 있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정인이의 사진을 본 뒤 멍이 많으며 아토피 증상은 전혀 없었다고 반박했다. 결국 양아빠는 아내의 학대를 알면서도 방관했던 셈이다.
당시 응급실에서 정인이를 만난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정인이의 배를 가리키며 "이 회색 음영이 다 피다. 이게 다 골절이다. 나아가는 상처, 막 생긴 상처, 이 정도 사진이면 교과서에 실릴 정도의 아동학대"라고 말했다.
"사진을 보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았다"고 한 그는 "갈비뼈 하나가 두 번 이상 부러진 증거가 있다. 온몸에서 나타나는 골절, 애들은 갈비뼈가 잘 안 부러진다. 16개월이 갈비뼈가 부러진다? 이건 무조건 학대다"라고 주장했다.
남궁인은 "결정적 사인은 장기가 찢어진 거고 그걸 방치한 거"라며 "바로 오면 살았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어 "양모가 무릎을 꿇고 '우리 아이가 죽으면 어떻게 하냐'고 울었다. 이게 학대고 살인이라고 다 알고 있었는데 부모가 너무 슬퍼하니까 진짜 악마라고 생각한 의료진도 있었다"고 전했다.
이날 방송에서 MC 김상중은 "아이의 얼굴 공개를 두고 깊고 길게 고민했다. 하지만 아이의 표정이 그늘져가는 걸 말로만 전달할 수 없었기에 공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같은 어른이어서, 지켜주지 못해서, 너무 늦게 알아서, 정인아. 미안해"라고 사과했다.
한편 정인이 양부모에게 살인 혐의를 적용해달라는 내용의 청와대 국민 청원은 지난달 20일 답변 기준인 20만명의 동의를 넘긴 23만명으로 마감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