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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스포츠서울 문상열전문기자] 유틸리티 맨(Utility man). 영어 사전에는 뜻이 여럿 있다. 연극에서 단역과 희한한 배역을 하는 배우를 일컫는다. 야구에서는 다양한 포지션을 수행하는 선수다. 또 주방 도우미 또는 배 위의 식탁 치우는 사람을 말한다. 가정내에 수도, 전기 등을 수리하는 핸디 맨을 유틸리티 맨이라고도 한다.

야구의 원 용어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다. 단순히 한 포지션의 백업 선수가 아니고 여럿 포지션을 맡는 선수를 유틸리티 플레이어라고 했다. 야구 용어 사전 ‘딕슨’에 따르면 최초의 유틸리티 플레이어는 1908년 디트로이트 타이거스 레드 다운스로 기록돼 있다. 다운스는 외야수 2루수, 유격수 포지션을 맡았다.

김하성의 여유로움
샌디에고 파드레스 2루수 김하성이 애리조나 피오리아 스프링트레이닝에서 훈련 첫날 타격훈련을 준비하고 있다. 피오리아(애리조나주)|스포츠서울 문상열전문기자

‘유틸리티 맨’은 1987년 3월24일 세인트 피터스버그 타임스 기사에서 처음 사용됐다. 유격수 데이브 콘셉시온을 지칭했다. 베네수엘라 출신의 콘셉시온은 MLB 19년을 신시내티 레즈에서만 활동했다. 1973년~1982년 10년 동안 9차례 및 8년 연속 올스타 선정, 골드글러브 5회를 수상한 명 유격수였다. 세인트 피터스버그 타임스 기자는 기량이 쇠퇴한 콘셉시온을 보고 “그는 예전에 데이브 콘셉시온이었다. 지금은 데이브 콘셉시온 유틸리티 맨이다”고 썼던 것이다. 세월의 무상함에 어쩔 수 없었던 콘셉시온이었다.

1982년 출범한 KBO리그 최초의 유틸리티 맨은 누구였을까. 현재 방송 해설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전 LG 트윈스 이종열이다. 한국 코치 최초로 MLB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연수했던 전 LG 트윈스 이광환 감독의 작품이다. 최근 기자와 통화한 이 전 감독은 “MLB에서는 엔트리가 25명에 불과한데 선수가 부족하지 않았다. KBO리그에서는 포지션별 백업 선수를 준비해야 돼 많은 선수들이 필요했다. 세인트루이스에서 25명의 로스터를 활용하는 것을 보고 유틸리티 맨에 대한 효용성을 알게 됐다. 특히 연수를 받고 있을 때 세인트루이스에는 슈퍼 유틸리티 맨격인 호세 오퀜도라는 선수가 있었다. 국내에 와서 유틸리티 맨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에 이종열이 딱 맞는 선수였다”고 회고했다.

오퀜도는 지난해까지 세인트루이스 코치로 활동했다. 현역 시절 투수를 비롯해 포수까지 9개 전 포지션을 맡았던 선수로 유명하다. MLB 사상 최고의 유틸리티 맨이다.

1991년 장충고를 졸업하고 LG에 입단한 유격수 이종열은 특출난 선수가 아니었다. 프로 선수의 자질감으로는 부족했다. 당시 함께 입단한 동대문상고 유격수 이우수가 공수에서 더욱 뛰어났다. 그러나 이우수는 8년 활동하고 현역에서 자취를 감췄다. 2009년까지 18년을 굽은 나무가 선산지키듯 LG 유니폼을 입었다. 유틸리티 맨의 포지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수행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종열의 성실함이 구단 프런트맨, 코칭스태프에 널리 알려져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김하성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틸리티 맨이 됐다. 연봉 700만 달러의 MLB 사상 가장 비싼 유틸리티 맨이다. 구단은 2800만 달러의 거액을 투자해 충분한 기회를 주고 있다. 4일(한국 시간) 메이저리그 첫 주전 2루수로 출장했다. 아직 나이도 어리다. 유틸리티 맨으로 계속 활동할 수는 없다. 기량으로 말해야 한다.

moonsy1028@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