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테니스 3모녀
경북 안동시를 대표하는 ‘테니스 가족’인 세모녀가 지난달 25일 2021 안동오픈 뒤 코트에서 밝게 포즈를 취했다. 손영자 안동테니스협회 회장과 정영원(왼쪽)-보영 자매. 프리랜서 김도원 촬영

[안동=스포츠서울 김경무전문기자] 어머니는 30년 넘게 경북 안동시에서 보석가게를 운영하며 두딸을 뒷바라지해 테니스 선수로 키워왔다. 자매는 그런 어머니의 열성적 관심과 노력으로 어엿한 선수로 성장했다. 여고시절까지 테니스 선수생활을 해왔던 어머니 자신은, 안동테니스연합회(동호인모임) 회장으로 지역 테니스 활성화에 헌신해왔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라는 안동시. 서울의 2.5배로 경상북도에서 가장 면적이 크다는, 16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이곳에서 ‘테니스 가족’으로 유명한 이들 세모녀를 모르면 간첩이라 할 수 있다. 주인공은 바로 손영자(60) 안동테니스협회 회장과 한국 여자테니스 유망주로 각광받고 있는 정보영(18·안동여고3), 여자실업테니스 명문 NH농협은행 소속의 정영원(25)이다.

안동은 ‘한국 테니스의 산실’로도 유명하다. 엘리트 선수로는 일찌감치 권오희와 조윤정이라는 걸출한 스타를 배출했고, 매년 안동오픈이 열려 테니스 가족들이 몰려든다. 그리고 이곳의 또다른 자랑거리인 세모녀 ‘테니스 패밀리’의 흥미로운 스토리가 있다.

정영원 보영 자매
정영원-보영 자매의 지난해 코트에서의 다정한 한 때. 손영자 회장 제공

“안동시에서는 우리 보영이가 제일 유명할 걸요. 테니스 우승했다고 신문에 기사가 많이 나와서….”

지난달 하순 2021 안동오픈테니스대회 현장에서 만난 손영자 회장은 이렇게 서슴없이 딸 자랑을 했다. 그는 안동테니스의 ‘대모’라 할 수 있다. 대구 현풍여중 2년 때부터 현풍여고 때까지 테니스 선수생활을 했고, 결혼 뒤 안동으로 삶의 터전을 옮겨 안동테니스연합회 회장직을 5년 동안 수행했다. 13년 동안 안동테니스협회 실무부회장을 맡다가 올해 엘리트선수와 동호인을 아우르는 통합 회장이 됐다.

그러나 그는 “동호인들이 부르면 언제든지 달려가는 안동테니스의 머슴”이라고 몸을 낮췄다. “테니스가 인기종목은 아니었고, 테니스협회 상황도 열악했습니다. 그래서 13년 전인가, 안동에서라도 제대로 테니스를 키워보자고 생각해 제가 나선 겁니다.”

안동에는 초등학교에서 중·고교까지 현재 65~70명 가량의 선수들이 테니스로 꿈을 키우고 있는데, 손 회장은 둘째딸 뿐만 아니라 모든 유망주들 지원에 힘을 쏟고 있다. “보영이를 일찌감치 서울의 테니스 명문학교(중앙여고)로 보낼 수도 있었지만, 이곳 유망주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어요.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정보영
정보영이 지난 4월 2021 국제테니스연맹(ITF) 김천 국제주니어대회 여자단식 결승전에서 장수하(서울 중앙여고)를 상대로 강한 포핸드 스트로크를 구사하고 있다. 대한테니스협회 제공

안동에는 용상초등과 서부초등학교, 안동중과 복주여중, 안동고와 안동여고에 테니스부가 있으며, 학교에서도 교장을 중심으로 선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고 손 회장은 감사를 표한다. 학교 코트도 잘 갖춰져 선수들의 연습에 지장이 없다고 한다. 안동은 테니스 인프라도 좋다. 손 회장은 “지난 1988년 안동시민운동장 내에 10개면의 하드코트가 생겼는데, 전국적으로 화제가 됐다”고 자랑했다. 그는 “선수들은 물론 동호인들이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둘째딸 정보영의 꿈은 세계 톱 50위 진입이다. 여고부 최강인 그는 내년에는 NH농협은행에 입단해 언니와 함께 한솥밥을 먹을 예정이다. 실업 입단 뒤에는 해외투어 적극 도전으로 랭킹포인트를 끌어올려 WTA 투어에서 주목받는 선수가 되겠다는 야망을 키우고 있다.

정보영은 “해외투어에서 많이 뛰면 100위까지는 갈 수 있는데, 실력있는 선수들만이 50위 안으로 갈 수 있다고 해서 그렇게 목표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1m70, 62㎏인 그의 장점은 ‘서브와 발리’다. 어머니는 이런 딸에 대해 “지도자들도 특별히 못하는 게 없다고 한다. 스스로 노력하고 성격도 적극적이어서 연습할 때 에너지를 아끼지 않는다. 다른 애들에 비해 서브가 월등히 좋다”고 평가했다.

정보영은 지난 4월11일 2021 국제테니스연맹(ITF) 김천 국제주니어대회 여자단식 결승에서 서울 중앙여고의 장수하를 2-0(7-5, 6-1)으로 제치고 2주 연속 국제대회에서 우승하는 등 기염을 토한 바 있다.

정영원 우승트로피
정영원이 지난 2018년 7월 춘천오픈 여자단식 우승을 차지했을 때 모습. 대한테니스협회 제공

보영 언니 정영원의 당면 목표는 성인 국가대표가 돼 태극마크를 다는 것이다. 그는 안동여고 시절 여고부 랭킹 1위의 유망주였고, NH농협은행 여자테니스단에 입단한 이후 팀 핵심 멤버로 활약중이다. 농협은행의 숱한 여자단체전 우승을 이끌었고, 2018년엔 춘천오픈 여자단식 정상에 올랐다. 어머니는 “연령별 국가대표를 다 해본 영원이가 올해 국가대표를 안하면 속상할 것 같다며 국대 꿈을 키우고 있다”며 “공 파워가 묵직한 게 장점”이라고 했다.

정영원은 지난해 안동오픈에서 한진성(국군체육부대)과 함께 혼합복식 우승을 차지했고, 올해 안동오픈에서는 동생과 처음 호흡을 맞춰 여자복식에 출전했다. 그러나 아쉽게 16강전에서 수원시청의 강호 김나리-홍승연을 상대로 1세트를 잡고도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안동 테니스 3모녀
손영자 회장과 자매가 코트에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 프리랜서 김도원 촬영

언니의 동생 사랑은 귀감이 되고 있다. 언니는 동생이 지난달 김천주니어대회 결승에 올랐을 때 현장까지 찾아가 40분 동안 공을 쳐주며 지도해줬고, 동생은 감격의 우승까지 차지했다. 정보영은 “언니랑 싸울 일이 없다. 고민이 있으면 언니가 제 말을 잘 들어주고, 휴가 때는 코치 노릇까지 해주면서 공을 같이 쳐 준다”고 했다.

안동의 세 모녀가 일심동체가 돼 보여주고 있는 테니스 사랑과 열정은 참 보기 좋고 아름답다. kkm100@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