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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제주 = 김용일기자] “아버지께서 축구 선수가 꿈이셨으나 이루지 못했다. 그 한을 풀고자 사업가로 성공한 뒤 생활 축구 보급에 뛰어들었다.”
‘2021 대한민국 제주특별자치도 국뢰체육문화산업(GRS) 풀뿌리(草根·초근) 축구대회’ 조별리그 최종전이 열린 지난달 20일 제주 사라봉축구장. 중국인 사업가인 궁서화(57) GRS 그룹 회장과 남동생 궁쇼청(52) GRS 한국지사 대표는 조별리그를 통과하고 본선에 진출한 동호인 팀을 격려하며 웃었다.
아쉽게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팀 선수 및 관계자와도 만나 다음 대회에 더 필요한 점을 묻는 등 세심하게 소통하기도 했다. 이 대회는 제주 동호인 축구팀 50세 이상 20개 팀, 50세 이하 16개 팀 등 총 36개 팀, 800여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생활 축구의 장이다. 지난 5~6월 조별리그를 치렀고 오는 9월부터 본선, 왕중왕전이 펼쳐진다.
중국인 사업가 남매가 제주에 대규모 풀뿌리 축구를 전파하게 된 것은 부친의 뜻에서 비롯됐다. 궁서화 회장은 스포츠서울과 만난 자리에서 “아버지는 어린 시절 축구 선수를 꿈꿨다. 그러나 1950년대엔 중국 내 축구팀이 없었고 여건도 마땅치 않았다”며 “선수 꿈을 버리고 목수 일을 하셨는데 공장 뒤 작은 공간에서 직장 동료와 공을 차는 것으로 마음을 풀었다고 하시더라”고 떠올렸다. 궁쇼청 대표는 “아버지는 1980년대 중국 개방 시대를 맞아 여러 사업에 뛰어들었다. 때마침 자신이 꿈꿔온 축구 분야에도 여러 사업을 그리다가 생활 축구의 장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품으셨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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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아버지는 중국 내에서도 사업이 크게 번창해 수조 원대의 자산가로 거듭났다. 축구를 좋아하는 중국 내 자산가는 대체로 최상위리그에 속한 프로팀을 인수하거나 투자하는 게 일반적이다. 고향인 청도에도 칭다오FC가 있다. 그러나 생활 축구 보급에 주력했다. 풀뿌리 축구를 키우는 건 오랜 세월이 걸릴뿐더러 투자하는 기업으로서는 당장 구체적 성과를 얻기 어렵다. 그럼에도 생활 축구에 눈을 돌린 건 탁구의 사례를 보고 향후 중국 축구의 근본적 뿌리에 이바지하고 싶어서였다.
궁쇼청 대표는 “중국 탁구가 세계 최강이 된 건 개방 시대부터 전 국민을 상대로 생활 탁구가 잘 보급됐기 때문이다. 중국의 많은 인구를 벗 삼아 아마추어 기반이 워낙 탄탄해지니 인재가 속출했다”며 “아버지께서는 축구도 풀뿌리 문화를 강화해야 한다고 여겼다. 생활 축구는 당장 (눈에 띄는) 성과를 보기 어렵지만 꾸준히 투자하고 노력하면 다음 세대에서 빛을 보리라고 믿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의 아버지는 오래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고 남매에게 바통을 넘겼다. 둘은 다른 사업도 추진하지만 아버지가 가장 공을 들이는 생활 축구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지난 2017 GRS를 설립해 고향 청도에 사비를 내놓으며 매년 풀뿌리 축구대회를 열고 있다. 청도시 내 400여 개 팀이 참가하고 있다.
본래 중국에서는 사기업이 축구 관련 사업 자체를 추진하기가 어렵다. 중국 정부와 중국축구협회(CFA)의 정책이 수시로 바뀌고 중앙집권적 제도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 내 축구 열기가 뜨거워졌고 GRS 대회가 최대 규모 아마추어 대회로 급성장하면서 중국 정부와 CFA에서도 2019년부터 예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밖에 스포츠전문채널(청도 QTV)에서 매주 생중계하는 등 일반 팬의 관심도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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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에서 시행한 생활 축구 대회가 제주까지 전파된 건 궁쇼청 대표의 노력 덕분이다. 그는 애초 다른 사업 건으로 제주를 오가다가 현지 좋은 기후와 안정적인 축구 인프라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 게다가 한국은 아시아 축구에서 정상급 지위를 누리고 있다. 중국이 엘리트 축구와 풀뿌리 축구의 간극을 좁히면서 한국, 일본, 이란 등 강호를 추격하는 시점에서 국내 생활 축구를 들여다보고 더 나아가 한·중 교류전을 치르기를 바랐다.
이는 곧 아버지가 바란 중국 생활 축구 발전의 비전과 맞닿아 있다. 누나인 궁서화 회장이 청도와 제주를 오가며 생활 축구 교류의 디딤돌을 놓았고 궁쇼청 회장은 5년 전 제주에 정착하면서 제주도축구협회, 대한축구협회 등과 꾸준히 소통하며 ‘제주판 GRS 풀뿌리 축구대회’ 유치 작업에 나섰다. 예상보다 국내 각 단체의 협조가 잘 이뤄졌고 올해 첫 대회를 개최했다.
궁쇼청 회장은 “청도에서는 이 대회를 여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한국, 제주에서는 많은 분이 생활 축구 보급에 뜻을 공감하며 단시간에 추진됐다”면서 “한국은 축구 실력만큼이나 열정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고 웃었다. 실제 조별리그 최종전 당일 KFA 관계자도 현장을 방문해 경기와 대회 운영을 지켜보는 등 높은 관심을 보였다.
궁서화 회장은 “9월부터 본선과 왕중왕전이 열리는 데 제주도 챔피언과 청도 챔피언 간의 교류전도 계획 중이다. 코로나19 상황으로 변수가 존재하지만 근본적으로 한·중 생활 축구 교류를 통해 양국이 풀뿌리 문화를 서로 배우고 느끼는 시간을 두게 한다는 뜻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의 목표는 한국과 중국에서 전국 생활 축구 대회를 여는 것, 그리고 훗날 아시아권 대회로 확장해 미래 축구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라며 “이러한 꿈이 이뤄지면 아버지께서도 흐뭇해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