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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3일 인천 SSG랜더스필드. 낯선 소년이 1루 더그아웃 앞에서 씩씩하게 공을 뿌렸다. 원바운드 되는 공도 있고, 제대로 들어가는 공도 보였다. 삼촌(선수단)들은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소년의 투구를 지켜봤다.
더그아웃으로 내려갔더니 추신수(40)와 꼭닮은 소년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즐거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둘째 아들 건우(13) 군이 문학구장을 찾아 아버지와 함께 훈련을 했다. 경기를 준비하는 추신수는 언제나처럼 루틴을 지켰다. 후반기에는 수비로 출전하기 위한 캐치볼부터 어깨와 팔꿈치 보강훈련 등을 빠짐없이 소화했다. 건우에게 물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할 때는 트레이너 몫까지 두 병을 주문(?)하는 자상함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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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SSG를 통해 KBO리그에 데뷔한 추신수는 코로나19 탓에 시즌 대부분을 가족과 떨어져있었다. 구단 관계자는 “최근에 큰아들 무빈 군을 제외한 가족들이 입국했다. 무빈(17) 군은 합숙캠프 같은 곳에 참여해 동행하지 못했다고 한다”고 귀띔했다. 건우 군과 고명딸인 소희(12) 양은 아버지가 고국에서 프로야구 선수로 뛰는 모습을 처음 ‘직관’하는 셈이다.
그런데 타격 훈련을 마친 추신수가 더그아웃 보호를 위해 설치한 안전그물망을 발로 콩콩 찼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제스처. 마음먹고 배트를 휘둘렀지만 펜스 앞에 떨어지는 등 원하는 타격이 안된다는 아쉬움의 표현인 셈. 추신수는 “지금까지 야구하면서 훈련 때 이렇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타구를 보내지 못할 때가 없었다. 실전은 훈련보다 성공확률이 더 낮은데, 훈련 때 완벽하지 않으면 실전에서 좋은 타구를 만들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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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멘소리를 했지만, 실전은 달랐다. 추신수는 하재훈의 적시타로 1점을 선취한 3회말 1사 후 들어선 두 번째 타석에서 좌월 2점 홈런을 때려냈다. SSG는 3-2로 KIA를 이겨, 추신수의 홈런이 사실상 결승타가 됐다. 8회말에는 중견수 키를 넘는 2루타로 멀티히트(한 경기 2안타 이상)를 모두 장타로 만들었다. 아들이 보는 앞에서 ‘아버지의 힘’을 과시한 셈이다.
그런데도 그는 “타구 두 개 모두 원하는 방향이 아니었다. KIA 선발투수인 이의리가 워낙 좋은 구위를 갖고 있어 (타구가)생각보다 멀리 나가서 홈런이 된 것”이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는 “아이들이 올해 KBO리그 직관을 처음했는데, 다른 것보다 응원 문화를 엄청 좋아하더라. 특히 소희는 흥이 많은 아이인데, 치어리더에 관심을 보이더라”며 웃었다. 그러면서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좋은 타격을 한 것보다는 팀이 이겨서 더 좋다. 팀이 매일 어려운 경기를 하는데, 그 가운데 내가 뭔가 결과를 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서둘러 더그아웃을 빠져나가는 추신수의 뒷모습에 아버지를 기다릴 아이들의 얼굴이 서렸다. 2주 전이던 파더스데이를 함께 보내지 못한 아쉬움을 털어내려는 듯했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