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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 장강훈기자] “제 삶은 이상하고 별나지만, 가치 있고 아름답습니다.”
지난해 신드롬을 일으킨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 스팩트럼을 가진 변호사 우영우가 외친 말이다. 우영우는 “길 잃은 외뿔고래가 흰고래 무리에 속해 함께 사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나는 그 외뿔고래와 같다. 낯선 바다에서 낯선 흰고래들과 함께 살고 있다. 모두가 나와 다르니까 적응하기 쉽지 않고, 나를 싫어하는 고래도 많다. 그래도 괜찮다. 이게 내 삶이니까”라며 편견과 선입견 속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현실을 희망적으로 표현했다.
한국프로골프(KPGA) 코리안투어에도 ‘가치 있고 아름다운 삶’을 사는 선수가 있다. 올해는 대기자 신분이어서 월요예선을 거쳐야 하지만, 흰고래 무리 속 홀로 살아가는 외뿔고래처럼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자폐성 발달장애 3급 장애인으로는 최초로 KPGA 투어프로 자격을 취득한 이승민(26·하나금융그룹)이 그 주인공이다.
태국에서 전지훈련 중인 이승민은 “정교한 쇼트게임을 위해 웨지와 아이언 샷을 가다듬는데 집중하고 있다. 수준 높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경쟁력 확보는 ‘꿈의 무대‘에 도전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그는 “코리안투어는 언제나 내게 꿈의 무대”라며 “코리안투어에 참가할 수 있는 기회을 얻으면 컷 통과에 성공해 개인 최고 성적을 경신하고 싶다”는 새해 포부를 드러냈다.
2017년부터 코리안투어 22개 대회에 참가한 이승민은 2018년 DB손해보험 프로미오픈에서 62위에 오른 게 최고 성적이다. 세 차례 컷 통과했는데, 올해 네 번째 컷통과를 목표로 삼았다. 월요예선을 치르는 모든 대회에 출전할 결심을 굳힌 그는 “지난해 최경주 선배가 ‘버디를 기록할 때마다 기부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도 이글과 버디를 할 때마다 각각 2만원 1만원을 꾸준히 저금통에 모으고 있다. 올해 많은 버디를 기록해 발달 장애인들에게 기부하고 싶다. 좋은 선수이자 꿈과 희망을 전달할 수 있는 이승민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꿈과 희망을 전달하려면, 국내 최고 선수가 모이는 코리안투어에 당당히 출전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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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포부도 있다. 이승민은 지난해 미국골프협회(USGA)가 주관한 US 어댑티브 오픈 초대 챔피언이다. USGA가 개최한 장애인 골프대회에서 11개국 95명(남자 77명 여자 18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내달 23일 열리는 US 어댑티브 오픈에서 타이틀방어에 나선다. 이승민은 “디펜딩챔피언으로 참가하게 돼 긴장되고 설렌다”며 “초대 대회보다 관심도 커질 것 같고, 선수들도 준비를 많이 할 것으로 보인다. 트로피 두 번째 칸에도 내 이름을 새길 것”이라고 의욕을 다졌다. 코리안투어에서 쌓은 경험이 US 어댑티브 오픈 우승 동력이 됐으니, 이승민에게 코리안투어는 꿈의 무대가 맞다.
어댑티브 오픈 타이틀 방어와 코리안투어 재입성 등의 꿈을 실현하면, 파리로 시선을 돌린다. 2024년 파리 패럴림픽에 골프가 신설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는 “올림픽에 나갈 수 있으면 초대 챔피언에 도전할 것”이라며 “발달 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과 관심을 높이기 위해 어떤 대회든 참가해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가치있고 아름다운 삶을 꿈꾸는 이승민의 도전은 올해도 계속된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