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이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신이 배신한 사람들’ 포스터. 제공|넷플릭스

[스포츠서울 | 박효실기자] 이것은 33년전 JMS 신자의 커밍아웃이다.

지난 3일 방송금지 가처분신청을 뚫고 세상에 나온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8부작 ‘나는 신이다-신이 배신한 사람들’을 본 뒤 도저히 멈춤 버튼을 누를 수 없어 새벽까지 3부작을 연속시청했다. 세상 어딘가에 아직도 JMS 신자가 존재하고 있을 줄은 알았지만, 성폭행 혐의로 10년형을 살고나온 정명석이 또 다시 신자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부분에서는 분노를 넘어 눈물이 쏟아졌다.

중학교 2학년 때인 1990년, 나를 무척 예뻐하신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의 전도로 교회에 다니게 됐다. 대구시 동구 신암동의 한 상가건물 2층에 있던 교회는 이상하리만치 열성적이었다. 신자들은 예배 중 큰 소리로 “주여!” “아멘”하고 소리쳤고, 가슴을 부여잡고 통성 기도를 해댔다. 찬송가도 이상했다. 조용필의 ‘일편단심 민들레야’를 ‘일편단심 주님이여’로, 민중가요 ‘직녀에게’도 군데군데 ‘섭리’ ‘지상천국’ 등이 들어간 곡으로 개사해 불렀다.

30개론이라고 불리는 교리과정을 꾸역꾸역 듣고 맨 마지막날 ‘창조론’ 수업에는 느닷없이 ‘산딸기’ ‘뽕’ 등 에로영화 포스터가 등장했다. 포스터에는 ‘산딸기 누가 따먹었나’ 같은 글이 적혀 있었는데, 교리 선생님은 “이게 바로 선악과의 상징이다”라고 말했고, 한동안 난 ‘멘붕’에 시달렸다.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는 여러가지였지만 여전히 강렬한 기억으로 남은 2가지 사건의 전말은 이러하다.

나를 전도한 담임 선생님이 돌연 결혼 소식을 전했다. 당시에는 ‘노처녀’로 여겨지던 스물아홉이었는데 “청년부 A씨가 결혼하고 싶은 사람으로 내 이름을 적어냈고, 선생님(정명석)의 결정으로 축복식(결혼식)을 하게 됐다”고 했다. 이게 무슨 미친 소리인가 싶겠지만, 당시 JMS에서는 실제 그런 방식으로 여러 쌍이 단체 결혼식을 올렸다. ‘선생님 미치셨어요?’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당시 나는 열여섯살에 불과했다.

JMS를 이단으로 처음 지목했던 종교연구가 고(故) 탁명환씨의 피습 소식도 기억에 남아있다. 어느 주일 예배에서 목사님은 “사탄 교주 탁명환이 어제 피습 당했다”고 환호에 찬 얼굴로 말했고, 신자들은 월드컵 승전보라도 들은 양 기뻐 열광했다. 여러 차례 사이비종교 집단에 공격을 당했던 탁 씨는 몇년 뒤인 1994년 2월 한 신흥종파 광신도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사망했다.

나는 신이다_신이 배신한 사람들_포스터

나는 신이다

나는 신이다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신이배신한 사람들의 JMS 피해자 메이플
넷플릭스 ‘나는 신이다:신이 배신한 사람들’. 출처 | 넷플릭스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는 교회에서 한 인간의 죽음을 갈망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그 환호성의 공포는 나를 멈춰세웠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공부를 핑계로 교회에 발길을 끊었고, 그렇게 세월이 지나 대학 졸업을 앞둔 1999년 나는 TV를 통해 정명석의 얼굴을 다시 봤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구원의 문인가, 타락의 빛인가-JMS’라는 이름으로 정명석의 성범죄를 비롯한 충격적 사이비 실체를 공개했을 때 팔이 와들와들 떨리던 공포를 기억한다. 선생님과의 신의를 저버리고 교회를 떠난 뒤 종종 ‘나는 왜 이렇게 끈기가 없을까’ 자책했었는데, 그날 처음으로 나의 나태함이 나를 구한 것에 감사했다.

의심 없이 끈기 있게 교회를 다녔다면 아마 내 인생은 1999년 그날 이후 크게 뒤틀리고 오랜 시간 무너져 내렸을 것이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정명석의 추악한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난 뒤 배신감과 자괴감에 극단적 선택을 한 신자들이 상당수 있었다.

그리고 24년이 흘렀다. 넷플릭스에서 JMS를 또 다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2008년 상습 성폭행으로 징역 10년형을 선고받은 정명석은 10년 복역 후 출소해 다시 성폭행을 일삼았고, 지난해 10월 출소 4년만에 재구속됐다. 다큐멘터리는 감옥에서도 여신도들의 사진을 보며 욕망을 채우고, 출소 후 버젓이 성범죄를 벌인 정명석을 조명한다.

다큐멘터리를 본 사람들이 “대체 어떻게 저런 인간에게 속느냐?” “뭔가 정신적으로 문제있는 사람들이 빠지는데 아니냐?”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여타 사이비종교나 다단계사기 사건을 ‘관찰자’로 보던 때 나 역시 많이 했던 말이다. 다큐멘터리에도 소개되었듯 JMS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파고들었고 교세가 한참 확장되던 1990년대 당시에는 엘리트 대학생들이 바글바글했다. 젊고 활기찬 개척교회처럼 보였던 그곳에서 그토록 추악한 범죄가 벌어지고 있을 줄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가스라이팅 당한 JMS 신자 상당수는 그래서 너무나도 불행하고 불쌍한 이들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친 신앙에서 배척당했고, 스스로에 대한 환멸로 인생이 파괴됐다. 또 한편으로는 삶을 건 ‘미련’한 믿음을 놓지 못하고 이제는 돌아갈 곳을 잃어버린 사람들이기도 하다.

나를 전도한 선생님은 그곳에서 결혼을 해 가정을 꾸렸다. 자신의 인생 뿐 아니라 가족의 인생이 모두 그곳에 집어삼켜졌다. 열성신자들은 전재산을 교회에 헌납하고 노방 전도에 인생을 바쳤다. 젊디젊던 대학생 언니오빠들은 사이비종교 홍보에 이용 당했고 성범죄에 유린됐다. 아끼는 제자였던 나를 전도한 선생님은 아마도 평생 나로 인해 죄책감을 느꼈을 것이며, 내가 전도한 많은 친구들은 나보다 오래 교회를 다니며 또 다른 피해자이자 가해자가 되었다.

평범한 교회의 얼굴을 하고 우리 사회에 잠입해 수많은 이들의 인생을 파탄낸 정명석은 그래서 다큐멘터리 속 김도형 교수의 말처럼 두번 다시 이 세상에 나와서는 안 되는 괴물이다. 기사를 빌려 수만명의 인생과 영혼을 송두리째 파괴한 정명석의 엄벌을 간절히 탄원한다.

gag11@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