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주 서울 시민들은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누군가는 한창 출근 준비를 할, 누군가는 아직 달콤한 아침잠에서 깨어나지 못했을 오전 6시41분. 스마트폰이 굉음을 내며 경계경보 문자를 수신했기 때문이다.
‘서울지역에 경계경보가 발령됐으며 국민 여러분은 대피할 준비를 하라’는 내용을 확인한 이들 중 상당수는 국내최고의 포털사이트에 접속했을텐데, 세상에, 포털사이트도 접속이 안 되는 상황. 아마 이 순간 많은 이들의 머리속에서는 ‘아, 결국 전쟁이 터졌구나’라는 생각부터 떠올랐을 것이다.
상황은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우리는 다시 한번 분명히 재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는 북한과 휴전 중이며, 전쟁의 위험은 언제든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이 일어난 후 온라인에서는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다. ‘생존배낭’, ‘긴급피난처’ 등의 검색어가 상위에 올라간 것이다. 특정지역에서 일어난 대형 사고나 자연재해가 아니라 전국가적인 위기가 벌어졌을지도 모를 상황을 겪어보니 ‘생존’, ‘피난’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올라간 것이다. 이번에는 그 중에서 생존배낭에 대해 한번 다뤄보려고 한다.
필자는 필자의 집에, 그리고 차 트렁크에 큰 배낭이 한개씩 항상 구비되어 있다. 그 안에는 통조림, 간편조리밥 등 비상식량과 방수가 되는 여벌의 옷가지, 그리고 2리터들이 생수 두 병이 들어있다. 여기에 한겨울에도 사용할 수 있는 침낭과 서바이벌 나이프라고 불리는 여러 공구가 결합된 형태의 생존도구, 그리고 비상약 몇가지도 함께 넣어뒀다. 이게 바로 필자의 ‘생존배낭’이다.
앞서 글에서 밝혔듯 일본에서 대지진을 경험했던 필자는 귀국 후 자연스럽게 생존키트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마침 백패킹 취미를 가지면서 아예 이렇게 배낭을 구성해 놓게 됐다.
인간은 맨몸 상태에서는 자연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몸에 털이 없어서 추운 날씨를 버티기 어렵고, 날카롭고 강한 손발톱이 없는 것은 물론 다른 포유동물에 비해 빠르지도 않아서 사냥으로 식량을 조달하기도 힘들다. 체구가 특별히 크거나 근력이 강한 편도 아니어서 맹수를 만나면 또 역시 살아남기 어렵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종의 정점에 오를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도구를 만들어내고 사용할 줄 안다는 능력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것이 사라질 수 있는 어떤 재난 상황이 벌어진다면, 앞으로 사용할 도구들을 얼마나 잘 챙겨놓았는가에 생존이 달려있다고 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생존배낭은 최소 3일치의 식량과 물을 확보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성인의 경우 72시간이면 재난이 벌어진 지역을 탈출해 다른 지역에서 보급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가 있는 것이다. 또 어떤 것들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인터넷에 자세히 나와있다. 여기에 필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몇가지 조언을 해본다.
첫째, 비축해놓은 물품이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생존 배낭은 그야말로 그 지역을 탈출하는데 필요한 정도만 있으면 된다. 따라서 이동과 움직임에 방해를 받지 않는 정도 크기의 배낭, 그리고 거기에 들어갈 만큼 양의 물품을 준비해야 한다.
둘째, 배낭을 지고 사흘동안 쉬지 않고 걸을 수 있는 체력은 미리 길러놔야 한다. 백패킹이나 등산 취미가 있는 분들은 잘 알 것이다. 하루만 산에서 지내고 온다고 해도 준비하는 배낭 무게가 만만치 않다. 2리터짜리 물통 두개가 들어있으면 그것만으로도 4kg이다. 물과 식량을 소모하면서 점점 무게가 줄어드는 것을 고려한다 해도 사흘치 이상은 무거울 수 밖에 없다.
더구나 계절이 겨울이면 두꺼운 옷들 때문에 배낭은 더 무거워진다. “군대 있을 때 40kg 완전군장하고 행군도 했다”며 라떼를 외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전역 후 운동을 멀리 했다면 10kg짜리 배낭을 메고 장시간 걷는 것도 힘들 수 있다.
마지막으로 생존 배낭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필자는 이번에 경계경보 문자를 받았을 때 뉴스를 보고는 바로 “별일 아니네”라며 출근 준비를 이어갔다. 기자 시절 통일부를 출입해봤던 필자는 경험상 북한이 미사일을 서해상으로 쐈다는 뉴스가 그다지 위협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장사정포를 쐈다는 뉴스였다면 “큰일났다”며 바로 배낭을 둘러메고 뛰어나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가 글을 통해 항상 강조하듯, 위험한 상황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닥칠지 모른다. 미사일이든 그 파편이든 서울 중심부로 날아올 수도 있었고, 실제 장사정포인데 정보를 잘못 전달받아 미사일이라고 보도했을 수도 있다. “별일 아니네”하는 순간, 필자도, 주변 사람들도 모두 한줌의 재로 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단 위험하다는 신호나 감이 있다면,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을 과신하지 말고 일단 조심하고 피하는 것부터 해야 한다.
이번에 긴급문자를 받고 곧바로 지하철이나 대피소로 뛰어갔다는 시민들이 있었다. “오발령 때문에 아침부터 고생했다”며 소감을 남겼지만, 그래도 이 분들이 필자보다 훨씬 현명했다고 생각한다. 위험한 상황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올 지 모른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피한 뒤에 경험과 지식을 총동원해 해결책을 찾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노경열 JKD KOREA 이소룡(진번) 절권도 대한민국 협회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