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영덕=김용일기자] 최근 막을 내린 국제축구연맹(FIFA) 호주·뉴질랜드 여자월드컵에 나선 한국 대표팀은 사상 처음으로 혼혈 선수가 최종엔트리에 뽑혀 본선 무대를 뛰었다. 만 16세로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를 둔 케이시 유진 페어다.
페어가 화제가 되면서 덩달아 언급된 이름이 있다. 지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린 장대일(48).
영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자란 그는 당시 연세대 시절 김호곤 현 축구사랑나눔재단 이사장의 조련을 받으며 중앙 수비수로 재능을 꽃피웠다. 그리고 성인 A대표팀에도 발탁됐다. 차범근 전 월드컵 대표팀 감독은 프랑스행 비행기를 탈 최종 명단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장대일은 한국 남녀 축구 통틀어 월드컵 무대에 간 ‘1호 혼혈선수’다. 다만 경기엔 뛰지 못했다. 즉 월드컵을 뛴 혼혈 선수는 페어가 처음이다.
프랑스 월드컵 이후 꽃길을 걸을 것 같던 그의 축구 인생은 예상과 달랐다. 프로 무대에서 6시즌만 뛴 뒤 별다른 이유 없이 은퇴했다.
장대일을 만난 건 지난 13일 경북 영덕군에서 진행한 대한축구협회 주관, 2023 농산어촌 유청소년 선진축구 체험 행사. 축구전문 매거진 베스트일레븐이 영덕군에서 진행중인 ‘풋볼페스타’ 기간 열린 이날 행사에서 그는 축구 지도 강사로 꿈나무와 호흡했다. 그라운드에 선 장대일을 20여 년 만에 본 것이다.
그는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당시 은퇴를 안 할 수 있었는데 후회하고 있다. 그동안 사업에만 집중해 살았다. 그러다가 지난해 월드컵 대표 출신 모임에 참석했고 (친선 경기를 했는데) 박경훈 선배, 김주성 선배 등이 현역 못지않게 날아다니시더라. 그땐 지금보다 10kg 살이 더 쪘을 때인데 ‘이거 안 되겠다’라며 다시 축구에 열정이 생겼다”고 웃었다. 특히 축구계에서 맡은 소임을 다하는 선배를 보며 반성하게 됐단다. 그는 “그동안 뭐 한거지? 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후 선배들에게 연락해서 축구계로 돌아가고 싶다고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은퇴 이후 이자카야 사업을 하다가 최근까지 건설업에 종사했다. “솔직히 처음에 사업하다가 돈을 많이 잃었다”고 웃은 장대일은 “돈 벌고 싶은 생각에 사업을 지속했고 최근엔 자리를 잡은 상황이었는데 (축구를 다시 접하면서) 너무 후회했다. ‘10년 전부터라도 다시 시작했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더라”고 고백했다.
마음을 다잡은 그는 C급 지도자 라이선스를 획득했고 내년 B급을 준비하고 있다. 장대일은 “늦었지만 그래도 해보려고 한다. 일단 A급까지 달리겠다”며 “가능하면 아이들부터 지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대일은 여자 혼혈선수인 케이시에 의해 자기가 다시 주목받은 것에 수줍어했다. 그러면서 선수 시절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학창 시절엔 (혼혈 선수가) 생소했기에 힘들었다. 그러나 대표팀에서는 선배들이 잘 해줘 괜찮았다”며 “꿈의 무대인 월드컵에 간 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물론 못 뛴 건 한이 남는다”고 말했다.
뒷이야기도 꺼내들었다. “그때 우리가 (조별리그) 1,2차전에서 멕시코, 네덜란드에 지지 않았느냐. 마지막 경기(벨기에전)를 앞두고 감독께서 방으로 나를 불러서 ‘다음 경기에 보여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때 감독께서 경질이 됐다. 갑자기 명단에서 제외됐다”고 웃었다. 가장 보고 싶은 선배 중 한 명이 차범근 감독이란다. “과거 길을 지나다가 멀리서 뵌 적은 있다. 그런데 축구계에 없을 때였고 창피하고 죄송해서 인사를 못 드렸다. 꼭 한번 뵙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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