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LA=문상열전문기자] 뉴욕 양키스 구단주 조지 스타인브레너는 ‘보스’로 통했다. 구단 운영을 탱크처럼 저돌적으로 해서 붙은 닉네임이다.
스타인브레너는 원래 선박 관련 사업을 했다. 타인브레너는 투자 그룹과 함께 1973년 1월에 양키스 구단을 CBS 방송사(1965~1972년)로 부터 매입했다. 당시 매각 가격은 1000만 달러. 그러나 스타인브레너는 이 거래에 주차장 2개(120만 달러)가 포함돼 있다고 밝혔다. 즉 양키스 매입 순 비용은 880만 달러(119억 원)다.
2023년 포브스 경제지에 따르면 양키스의 가치는 71억 달러(9조6063억 원)로 메이저리그 최고다. 50년 동안 806배가 올랐다.
스타인브레너는 리버럴 아츠 스쿨의 대표 주자인 윌리엄스 칼리지를 졸업했고, 풋볼 명문 오하이오 주립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오하이오 스테이트의 레전드로 존경받는 우디 헤이스 감독 밑에서 졸업생 코치를 맡았다. 헤이스는 카리스마와 성격이 불같았다. 이후 스타인브레너는 명문 노스웨스턴 대학, 퍼듀 등 빅10 콘퍼런스 대학의 풋볼 코치를 역임했다.
스타인브레너는 구단을 인수한 뒤 1976~1978년 3년 연속 월드시리즈에 진출하고 1977, 78년 2년 연속 정상을 차지했다. 1976년(WS 진출), 1977년(우승) 감독은 2루수 출신 빌리 마틴이었다. 그런데 1978시즌 도중 스타인브레너는 마틴 감독을 해고한다. 이때 성적이 52승42패였다. 대행이었던 봅 레몬 감독은 WS 타이틀을 수성했다.
마틴은 1975년에 처음 양키스 감독으로 영입했다. 미네소타, 디트로이트, 텍사스 감독 경력이 있었다. 스타인브레너는 마틴을 감독으로 영입하고 해고한 게 무려 5차례에 이른다. MLB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마틴도 성격이 불같아서 스타인브레너 구단주에 굴하지 않았다. ‘미스터 옥토버’ 레지 잭슨과 더그아웃에서 몸싸움을 벌였던 감독이다.
1973년~1991년까지 양키스는 자그마치 15명의 감독이 바뀌었다. 1992년 양키스 팜팀 출신 벅 쇼월터가 지휘봉을 잡은 이후 사령탑이 안정됐다. 그리고 1996년 조 토리가 감독이 된 뒤 4회 우승의 기틀을 마련했다. 2009년 양키스의 마지막 27번째 우승까지가 스타인브레너 구단주 시대다. 2010년 80세로 타계했다. 원로위원회 자격을 얻으면 명예의 전당에 선정될 가능성이 높다.
SSG 랜더스의 김원형 감독 해고를 보면서 스타인브레너 구단주를 연상케 했다. 그는 여론도 의식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스타인브레너는 구단 인수 후 1991년까지는 마음대로였다. 나이가 들면서 자식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뒷전으로 물러났다.
정용진 구단주는 이미 심판 판정이 오심이라며 KBO에 항의 방문할 때부터 ‘나는 보통 구단주와 다르다’는 것을 과시했다. 김원형 감독은 SSG가 인수한 첫해 6위, 2022년 한국시리즈 우승, 2023년 포스트시즌 진출이다. 역대 이런 성적을 남기고 해고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보통 KS 우승-포스트시즌 진출-6위는 해고다. 하지만 김원형 감독은 반대였다.
올 포스트시즌 준플레이오프에서 NC 다이노스에 무기력하게 3패로 무릎을 꿇자 구단주가 열받아서 해고한 이유 외에는 설득력이 없다. 앞으로 SSG의 어떤 감독도 포스트시즌 좌절, 포스트시즌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해고될 각오를 해야 한다. 우승 외에는 구단주를 만족시킬 수 없을 테니까.
그런면에서 LA 다저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은 오너십이 SSG 구단주과 다른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SSG였다면 목이 몇 개라도 서바이벌하기 어렵다. 어쨌든 야구를 너무 쉽게 대하면 안된다. 의지대로 안되는 게 야구와 골프다. 인내심이 필요한 게 야구 경영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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