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이웅희기자] ‘목숨 걸고 말을 타라?’

지난 5월 초 폭우로 인한 경주 취소 당시 경주 강행에 대해 반발했던 기수들의 면허가 취소됐다. 경마 팬들 사이에 과도한 징계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크다.

한국마사회는 지난달 말 2023년도 제2차 상벌위원회 개최결과를 발표했다. 조교사 4명과 말관리사 1명, 기수 3명에 대한 징계가 내려졌다. 김옥성 기수와 김용근 기수에게는 면허취소라는 중징계가 내려졌다.

두 기수의 징계 근거로 경마시행규정 제75조 및 제108조 위반을 들었다. ‘제75조 출발지점에 집합한 기수는 출발위원의 허가 없이 타고 있는 말에서 내릴 수 없다’와 ‘제108조 개최운영위원의 직무수행을 방해하거나 직무상의 명령 또는 지시에 따르지 아니한 경무자 관계자’를 근거로 면허를 박탈한 것이다.

발단은 지난 5월 6일이다. 당시 전날부터 내린 폭우로 인해 1경주만 치르고 이후 경주는 모두 취소됐다. 면허취소를 당한 김옥성 기수와 김용근 기수는 해당일 경주에 배정받은 상태였고, 경주 취소 과정에서 경마시행 관계자와 의견충돌을 빚었다.

어렵게 연락이 닿은 김용근 기수는 “당시 전날부터 비가 많이 왔다. 1경주를 하는데 주로가 안 좋아서 합동점검반 팀이 나왔다. 한국마사회 직원과 주로 관리팀장, 기술협회장, 기수들 1,2명 주로 점검을 했다. 위험하다고 경주가 어렵겠다고 판단했지만, 고객이 들어왔으니 1경주는 뛰어보자 시행처에서 얘기해 1경주는 시행했다”면서 “뛰고 나서 기수들이 위험해서 안 되겠다. 주로가 울퉁불퉁하고 웅덩이도 많다고 하니 주로 보수팀이 나가 보수, 정비를 했다. 이후 2경주 기수들이 발주기 뒤까지 갔는데 못하겠다고 해서 2경주는 취소됐다. 또 주로 정비하고 합동점검반이 나갔다. 3경주에 배정된 나와 다른 기수들은 대기실에서 들어와 기다리고 있었는데 방송으로 3경주를 한다고 나가라고 하더라. 아무 내용도 듣지 못했고, 상의할 시간도 없었다. 비상대책위원회가 열렸는지도 몰랐다”고 밝혔다.

경주에 출전하라는 방송에 주로로 나간 김 기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주로를 나갔는데 게이트 1~5번 사이 출발 지점부터 전방 200m까지 물이 너무 많이 고여 울퉁불퉁하더라. 너무 위험했다. 시정 조치를 해 달라 얘기했다. 내 주로가 위험한 상황이었다. 달려야 할 곳이 너무 위험했다. 다른 기수들도 위험해 못한다고 얘기했다. 외국인 기수도 있었는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라”라며 “기다리는 상황에서 내가 먼저 말에서 내렸고, 시정조치하려면 시간도 걸리니까 모든 기수들이 다 말에서 내리더라. 한참 기다렸는데 아무 정비도 안하고 다시 기승하라고 하더라. 보수도 하지 않았는데 타고 기다리니 갑자기 출발준비를 시키더라. 기수들 모두 당황했다. 갑자기 그 상황에서 경주를 하다 사고가 발생하면 생명이 위험했다”고 말했다.

이후 두 번째 하마를 했다. 그 상황에서 시행체 관계자와 충돌이 있었다. 김 기수는 “김옥성 기수가 가장 먼저 내리고 뒤이어 모두 내렸다. 김옥성 기수가 주로를 벗어나 바깥에서 기다리는데 관계자에게 전화가 와 통화를 하게 됐다. 언성이 높아지는 듯 했다. 이후 경마가 취소됐다. 모 기수가 ‘만약에 사고나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라고 묻자, 관계자 모두 아무 대답을 안 하더라. 결국 경주가 취소됐는데 주로 불량 및 기수 기승거부라고 방송을 내보내더라”라고 당시를 설명했다.

기수에게 면허취소는 사실상 사형선고와도 같다. 그런 중징계를 6개월 가까이 지난 후에야 내렸다는 것도 석연치 않다. 경마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최근 국정감사가 있었다. 국정감사 때 징계로 인해 시끄러우면 좋지 않으니 국정감사 이후로 상벌위원회를 여느라 징계시기가 늦어진 게 아닌가 싶다”라고 밝혔다.

당시 취소된 경주에 배정됐던 기수 중 2명의 기수에게만 징계나 내려진 이유도 명확하지 않다. 김 기수도 “당시 4경주 때는 기수들 모두 못하겠다고 하며 다 같이 나가지 않았다. 왜 2명만 찍어서 출전 정지가 아닌 면허 취소까지 시킨 것인지 모르겠다. 난 목숨이 걸린 일이니 그렇게 한 것인데 면허 취소까지 당할 정도의 잘못인지 정말 억울하다”라고 안타까워했다. 한 관계자는 “기수가 부족한 상황이다. 기수 모두에 징계를 내리면 경주에 뛸 기수가 부족하지 않겠는가. 당시 경주 운영에 반발했던 두 기수를 본보기로 찍어내는 징계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마사회 측은 “상벌위원회에는 (외부)위원장 포함 5명, 경마본부장, 경마관리처장, 심판처장 등 8명이 참석했다. 당시 오후 1시 33분 경 비대위 개최결과 기수들의 기승거부로 인한 경주진행이 불가하다고 판단패 4경주 및 잔여 경주를 모두 취소했다”면서 “주로의 컨디션이 경주를 진행하여도 무방하다고 합의해 비상대책위원회에서 경주를 계속 진행하기로 결정했음에도 절차에 따른 승인없이 무단으로 하마해 경주를 지속적으로 방해, 경주 취소까지 영향을 줬다”며 징계 사유를 설명했다.

김 기수에 관해서는 “출발위원의 허가 없이 임의로 하마하고 출발위원이 재차 요구한 기승요청을 지속 거부하며 원활한 경주시행에 지장을 초래했고, 이후 재기승 직후 다시 하마하여 나머지 기수들의 경주 기승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징계 관련 문서에 명시했다. 하지만 당시 경주에 배정됐던 기수들은 “경주를 하면 위험한 상황에서 김 기수가 총대를 맨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가정법을 적용해보자. 만약 기수의 기승 거부에도 경주를 강행해 사고가 발생했다면 누구의 책임일까. 물론 정해진 규정과 규칙을 어긴 기수는 분명 잘못을 범했다. 징계 대상이다. 한국마사회 역시 기강을 위해서 징계없이 지나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살기 위해’ 단 한 번 기승거부를 했을 뿐인데 경주에 평생을 바친 기수에 견책, 면허정지가 아닌 사형과도 같은 면허취소 징계를 내린다는 것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경마 팬들이 이번 두 기수의 면허 취소를 두고 과도한 징계라고 말하는 이유다. iaspire@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