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정다워 기자] K리그가 또 ‘정치 논리’ 함정에 빠졌다.
충남 아산은 지난 9일 이순신종합운동장에서 열린 K리그2 홈 개막전에서 파란색 홈 유니폼이 아닌 빨간색 유니폼을 착용했다. 원정 유니폼인 흰색도 아닌 세 번째 유니폼을 입었다.
충남 아산을 상징하는 색은 파란색이다. 2020년 창단 당시부터 이어진 전통이다. 일반적으로 홈에서는 홈 유니폼을 입고 뛴다. 간혹 스페셜 에디션 유니폼을 제작한 경우를 제외하면 홈 유니폼을 착용하는 게 상식이다. 홈 개막전이라면 더 그렇다. 그런데 새 시즌을 시작하는 홈 경기에서 충남 아산은 뜬금없이 빨간색 유니폼을 입었다. 심지어 빨간색은 이날 경기의 상대인 부천FC1995를 대표하는 색상이다. 홈팀 스스로 적을 응원하는 꼴이 된 셈이다. 구단 결정에 물음표가 붙을 수밖에 없다.
충남 아산은 경기 전 이미 한국프로축구연맹의 허락을 받고 세 번째 유니폼을 착용하기로 했다. 구단 관계자는 “이순신 장군 축제에 맞춰 빨간 유니폼을 입기로 했다. 이순신 장군의 붉은색 갑옷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연맹도 이를 인지했고, 허가했기 때문에 규정상 문제 될 것은 없다.
표면적으로 내세운 배경은 이렇지만, 사실 알 만한 사람은 이유를 다 안다. 4월10일 열리는 총선 때문이라는 데 이견이 많지 않다.
충남 아산 구단주인 박경귀 아산시장은 국민의힘 소속이다. 명예구단주인 김태흠 충남도지사도 같은 정당에 있다. 빨간색은 국민의힘을 대표하는 색이다.
충남 아산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구단이라고 그러고 싶어서 빨간색을 입었겠나. 결국 정치 논리의 희생양이 됐다고 볼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총선이 다가오니 지자체에서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강행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지자체장의 정당 소속이 유니폼 색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니겠나”라고 목소리를 냈다. 유니폼 색을 통해 일종의 선거 운동을 했다는 합리적인 비판이 나오는 게 어색하지 않다.
충남 아산 팬조차 구단의 결정에 손가락질하고 있다. 구단 SNS에는 빨간색 유니폼을 입고 홈 개막전을 치른 것에 관해 격정적으로 비판하는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일부 서포터는 경기장에서 구단주와 명예구단주를 비판하는 현수막을 걸기도 했다.
정치인 입장에서는 뭐가 문제인지 모를 수 있지만 축구장 내에서 정치적 행위는 철저하게 금지된다. 연맹은 물론이고 국제축구연맹(FIFA)에서도 엄격하게 다루는 사안이다. 유니폼 변경만으로는 정치적 행위를 했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구단이 정치 논리에 휘말렸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이날 경기장 밖에서는 선거 운동으로 간주할 만한 행위가 직간접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연맹 관계자는 “라운드를 마치고 11일 경기 감독관 보고서를 확인해야 한다. 만약 보고서를 통해 축구장에서 정치적 행위가 있었다는 결론이 나오면 연맹 차원에서 징계를 검토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선거철이 되면 축구장은 정치인의 등장에 몸살을 앓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과거 다른 도민구단 경기에서는 관중석에서 직접 선거 운동에 나서 구단이 강한 징계를 받은 사례도 있다. 주목받아야 할 경기, 선수가 아닌 장외 사건에 더 큰 관심이 쏠린 사건이었다.
K리그 25팀 중 15팀이 시도민구단이다. 지자체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정치적으로 완벽하게 독립하기 어려운 게 K리그의 현실이다. 양적 팽창으로 발생하는 그림자가 이번 선거철에도 또다시 K리그에 엄습했다. weo@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