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장강훈 기자] KBO리그 개막이 불과 열흘 앞으로 다가왔다. 시범경기가 한창인데, 팬 관심이 뜨겁다. 감사할 일이다.

올해 KBO리그는 자동볼판정시스템(ABS) 전면 도입과 피치클락 시범운영 등으로 팬 눈길을 끌고 있다.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7·한화)이 KBO리그로 돌아왔고 김택연(두산) 원상현(KT) 김현종(LG) 등 빼어난 신인들의 향연도 기대감을 높인다. 흥행요소가 많아 KBO리그 르네상스를 기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시범경기를 지켜보면서 ‘KBO리그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쪽도 개선해야 할 쪽도 있다는 얘기다.

제도변경과 맞물려 각 팀 전력을 따져보면, 올시즌은 ‘베테랑의 역할’이 어느해보다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팀 전술·전략보다 개인역량에 맡기는 경기운용이 뿌리내릴 전망이어서다. 우선 ABS 여파다. 판정 일관성을 담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예년에 비해 넓어진 게 사실이다. 특히 높은 쪽은 KBO리그 타자들이 대체로 약점을 보이는 코스다. “높은 코스를 던질 투수가 없다”는 반론도 나올 수 있지만, 어쨌든 투수들이 먹고 살 확실한 코스가 추가된 건 분명하다.

KBO리그뿐만 아니라 고교, 대학야구, 독립리그 등을 살펴보면 이른바 ‘로우볼 히터’가 압도적으로 많다. 스윙궤도 자체를 올려치는 데 특화한 타자가 많다는 뜻이다. 낮은 속구, 높은 브레이킹볼에 스윙궤도를 맞춘 타자는 힘을 실어 던지는 높은 공에 약점을 보일 수밖에 없다.

자기만의 스트라이크존을 정립한데다 파울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타자가 유리하다는 의미다. 힘대 힘으로 맞서는 젊은 타자보다 경험을 통해 카운트싸움을 전개할 수 있는 베테랑의 힘이 승부처에 필요할 가능성이 높다.

스트라이크존에 민감하거나 영향을 크게 받는 타자들은 시즌을 치를수록 체력이 빨리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심리적 압박감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데, 기계가 볼 판정을 하니 중간에 바뀌지 않는다. 변수 하나가 사라졌으니, 정신적 피로감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 역시 체력관리 노하우가 풍부한 베테랑이 유리하다.

투수도 마찬가지다. 타자들의 반응을 보고 경기 운영에 변화를 주는 투수들은 기본적으로 경험이 많아야 한다. ‘투수는 베테랑이 될 수 없다’는 속설도 있지만, 류현진의 복귀는 경기를 풀어가는 요령에 가장 효과적인 교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눈으로 보고 행동으로 옮기려면 기본 이상의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구종이나 코스를 따라하는 것이 아닌, 경기운영 전체를 들여다보는 눈이 있어야 벤치마킹할 수 있다. 이 또한 베테랑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베테랑이 풀시즌을 소화할 순 없다. 비슷한 능력을 가진 젊은 선수들이 많은 팀이 그래서 유리하다. 베테랑들의 비호 속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젊은 피’ 한두 명만 있으면 강팀 반열에 오를 수 있다.

또 하나 거꾸로 가는 시간은 뉴미디어 중계다. 티빙이 거액을 들여 뉴미디어 중계권을 구입해 시범경기부터 운용 중이다. 자막, 편집 실수도 도드라지고, 모바일에 맞춘 탓에 TV 화면으로는 픽셀값이 떨어져 보이는 중계화면도 야구팬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포털사이트가 뉴미디어 중계사업자로 선정됐을 때는 수년간 시행착오를 겪을 시간이 있었다. 상대적으로 준비 기간이 짧았던데다 ‘일상처럼 익숙한 환경’에서 급격히 탈피했으니, 불만 목소리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 KBO리그가 포털사이트 전경기 중계 이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위기론이 시범경기 시작 이틀 만에 터져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뉴미디어 사업권을 독점하면 선택지는 두 가지다. 더 좋은 서비스로 이용자를 폭발적으로 끌어모으거나 철저히 외면받는 것이다. 전문가 없이 야구팬을 상대하는 건 후자 쪽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르네상스를 꿈꾸던 KBO리그에 무시할 수 없는 악재가 될 수 있다. zzang@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