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윤세호 기자] “투수가 유리할 줄 알았는데 정반대로 간다.”

낯설지는 않다. 시간을 6년 전으로 돌리면 지극히 익숙하다. 야구장마다 난타전이 벌어지고 경기 시간은 하염없이 늘어난다. 이른바 ‘타자 천국·불펜 지옥’.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타고투저였던 KBO리그다.

타격 지표부터 치솟았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리그 평균 타율은 0.286. 평균 OPS(출루율+장타율)는 0.797. 타율 0.300 이상 타자는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2014년 36명, 2015년 28명, 2016년 40명, 2017년 32명, 2018년 34명이었다. 장타도 마찬가지. 홈런왕이 되기 위해서는 40개 이상의 아치를 그려야 했다. 멕시코 리그를 방불케 하는 핵방망이 리그였다.

반대로 마운드는 불난 집이 됐다. 3점대 초반으로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선발은 그야말로 외국인 투수 전성시대. 토종 선수로 구성된 불펜은 늘 활활 타올랐다. 2014년부터 2018년까지 리그 평균자책점은 5.07. 좋은 투수의 기준점이 모호해지고 투구 육성에 애를 먹었다.

마냥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 2019시즌을 앞두고 공인구 반발계수 상한선을 낮췄다. 지나친 타고투저 현상의 원인이 공에 있다고 판단했다. 현상이 지속될 경우 국제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봤다.

의도한 대로 2019년부터 타고투저 현상은 완화됐다. 2023년까지 5년 동안 리그 평균 타율 0.265. 평균 OPS는 0.727이다. 타율 0.300 이상 숫자도 타고투저 시절보다 2배 이상 줄었다. 2023년 타율 0.300 이상을 기록한 타자는 14명에 불과하다. 홈런왕 요건도 30개 내외로 10개가량 줄었다. 지난 5년 리그 평균자책점은 4.45. 투수를 평가하는 기준점도 비교적 명확해졌다. 매 시즌 도약하는 젊은 투수의 비중도 크게 늘었다.

그런데 올해 다시 타고투저 조짐이 보인다. 시즌 극초반 투수 고전이 두드러진다. 지난 2일 기준 리그 평균자책점 4.80. 리그 평균 타율은 0.271에 평균 OPS 0.766이다. 과거만큼 극도의 타고투저는 아니지만 지난 5년보다는 투수에게 어려운 리그로 변하고 있다.

불펜이 특히 그렇다. 불펜 평균자책점 5.36. 타고투저 시절보다도 높다. 경기 중후반 빅이닝이 속출한다. 시범경기까지 필승조로 낙점한 투수들이 하염없이 안타를 맞고 고개 숙인 채 마운드에서 내려간다. 두산 정철원, NC 류진욱, KT 박영현이 두 자릿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있다.

원인을 두고 여러 해석이 있다. 지난달 22일 발표한 공인구 반발계수가 상한선에 근접했다. 하지만 현장은 공보다는 새롭게 도입한 자동 볼 판정 시스템(ABS)을 응시했다. 처음에는 홈플레이트보다 좌우 간격 2㎝ 가량을 늘린 ABS 스트라이크존이 투수에 어렵지 않으리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투수보다 타자의 ABS 적응 속도가 빠르다는 게 사령탑 의견이다.

LG 염경엽 감독은 “ABS가 투수한테 좋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오히려 타자가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NC 강인권 감독도 “ABS로 인해 점수가 많이 나는 흐름이 아닌가 싶다. 투수들이 ABS를 의식해 하이 패스트볼을 많이 던지는 데 이게 실투가 되면서 장타로 연결되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고 설명했다.

LG와 NC 모두 지난해 불펜이 강한 팀이었다. 불펜 평균자책점에서 LG는 3.43으로 1위, NC는 3.92로 3위였다. 올해는 지난 2일 기준 LG가 4.26으로 4위, NC는 5.49로 6위다.

물론 표본이 적다. 앞으로 한 달 이상은 봐야 리그 흐름도 뚜렷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래도 감독 입장에서는 변수의 폭이 넓은 타고투저 보다는 투고타저가 낫다. 현재 흐름이 지속될 경우 마운드 운영을 비롯한 감독의 역량이 이전보다 크게 작용할 수 있다. bng7@sportsseo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