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함상범 기자] 배우 구교환이 다음달 3일 개봉하는 영화 ‘탈주’에서 ‘관능’이라는 새로운 얼굴을 선보인다.

첫 등장부터 압도적이다. 모자 챙으로 얼굴을 가리고, 자신보다 나이 많은 동지 앞에서 립밤을 ‘빱빱’ 바르는 모습은 그가 연기하는 현상이 범상치 않은 인물이란 걸 보여준다. 아이처럼 해맑게 “규남(이제훈 분)아”라고 부르다가, “네 앞길을 왜 네가 정해?”라고 늘하게 말하기도 했다.

피아노로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다가, 완벽에 가까운 군사 전술을 구사했다. 순수함과 광기가 도사리는 인물을 구교환은 자연스럽게 표현했다.

“현상이 가진 얼굴의 시작과 엔딩이 다르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가면을 벗는 느낌이었죠. 마치 러브레터를 읽듯 커튼이 휘날리는 곳에서 현상의 얼굴이라면 충분히 멋진 엔딩일 것이라 생각했어요.”

극 중 현상은 공산당 내 막강한 권력을 가진 보위부 장교다. 누구나 현상을 두려워한다. 원래는 피아니스트를 꿈꾼 유학파 출신이지만, 높은 권력을 가진 아버지의 요구 때문에 군인이 됐다. 누구보다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다.

“현상도 규남처럼 꿈에 대한 갈망이 큰 인물이죠. 우민(송강 분)은 그 욕망을 계속 자극하는 인물이에요. 규남에게 현상은 강력한 장애물이겠지만, 현상에게 규남은 질투와 부러움을 유발하는 존재예요. 그래서 더 치열하게 쫓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 등장부터 현상은 시종일관 관능적이다. 배시시 웃는 얼굴 뒤엔 서늘함이 이어졌다. 필요에 따라 총살도 마다하지 않았다. 분노에 차오른 순간에는 광기가 흘렀다. 행동은 늘 최소한으로 움직였다. 뒤에서 주위를 관망하다, 적재적소에 정확한 행동만 했다. 이 모든 것이 관능적으로 느껴졌다.

“섹시하다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의도나 전략은 없었어요. 모든 건 제작진 덕분이죠. 가장 섹시한 구도에서 카메라를 잡고, 조명을 비추고, 의상을 선정해 주셨죠. 그순간의 에너지가 섹시함을 만들었어요. 저는 그냥 올라타기만 한 거예요.”

구교환은 대본에 숨은 1인치를 찾아내는 배우로도 통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D.P.1’에서 햄버거 브랜드 로고송을 부르면서 등장하거나, 안준호(정해인 분)를 가짜로 때리는 신에서 박스를 들고 던지는 등 오버하는 장면은 구교환의 아이디어다. ‘탈주’에선 물티슈로 마법 같은 장면을 만들었다.

“저는 동물적으로 연기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대본을 계속 읽으면서 앞뒤 장면을 생각하곤 하죠. 그러다 보면 기발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거죠. 감사한 제작진이 그 의견을 잘 받아주신 거고요.”

배우는 독창성을 훈련한다. 시스템에 얽매이다 보면, 개성을 잃는다. 독창성만 따지면 대중성을 잃기도 한다. 균형감 있는 상황에서 자유로움을 열망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에 순응하는 현상은 배우로서 표현하기 어려운 대목일 수 있다.

“저도 현상의 시간을 통과했어요. 시스템 안에 갇혀서 지낸 시간이 길어요. 그 시스템을 뚫고 나오기가 두려웠던 적도 있고요. 영화 만들면서부터 제 삶도 규남처럼 흘러왔던 것 같아요. 저도 마음껏 실패하면서 지금의 위치까지 왔어요.” intellybeast@sportsseoul.com